카메라타 서울 SNS/음악지 칼럼

마린 알솝을 통해 본 국내 여성 지휘자들의 스타일

Conductor 2016. 7. 31. 12:01

지휘에 있어서의 유연성의 문제

 

마린 알솝을 통해 본 국내 여성 지휘자들의 스타일

 

세계적인 여성 지휘자 마린 알솝의 레닌그라드 교향곡

 

세계의 여성(女性) 지휘자로 볼티모어 심포니의 음악감독을 지낸 마린 알솝이 있다. 필자가 왜 마린 알솝으로 이번 호의 지휘 칼럼을 시작했는가 하면, 가끔 여성 지휘자에 대해 묻는 음악인들과 애호가들이 있어서이다. 칼럼은 지휘에 관한 내용이며 페미니즘의 관점(觀點)과는 별개(別個)이니 남성 중심 시각(時角)의 글이 아님을 밝힌다.

 

마린 알솝의 지휘로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가 연주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레닌그라드가 있다. 러시아 음악은 통상 대륙풍(大陸風)으로서 극히 남성적이며, 선이 굵은 것이 특징이다. 고로 여성 지휘자가 다루기에는 힘에 겨운데, 그럼에도 마린 알솝은 무난(無難)하게 이 대곡을 소화(消化)했다.

 

이제는 국내에도 여성 지휘자들이 많이 활동하지만, 그 전문성에 있어서는 다소 의문(疑問)이 따르는 이유를 마린 알솝과 비교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마린 알솝의 레닌그라드심포니 1악장에서는 현악기의 피치카토와 콜레뇨, 타악기의 스내어드럼 등이 정확한 박자에 의해 연주되는 부분이 나온다. 대부분의 여성 지휘자들의 박자가 흐트러지는 일례(一例)인데, 그 이유를 필자는 여성 지휘자들의 손목과 팔꿈치의 과도(過度)한 유연성(柔軟性)에서 찾는다. 또한 합창 지휘자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국내 지휘자의 차이코프스키 로미오와 줄리엣서곡 지휘를 보고

 

같은 러시아 음악으로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국내 한 여성 지휘자가 지휘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연주 도중에 현악기 저음(低音) 부분의 피치카토가 연이어 엇박자로 나오는 부분이 있으며 싱코페이션 리듬도 나온다. 엇박자의 지휘와 피치카토의 타법(打法)이 동시에 표현되어야 하므로, 지휘자에 있어 정확한 비트와 그를 확실하게 단원들에게 전달하는 지휘법이 요구된다. 그러나 아무런 타법의 변화 없이 넘어가니 피치카토의 정확성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 위를 타고 흐르는 멜로디의 악기군들과의 조화가 흔들렸다.

 

지휘봉과 가장 가까운 악기군을 꼽으라면 현악기군이다. 즉 지휘봉과 비슷한 활을 들었으며 보잉은 지휘봉의 타법과도 유사(類似)하다. 이 현악기 주법 중에 극히 세밀한 피아니시모를 연주할 때와, 보잉이 활 끝으로 갔을 때 이의 떨림을 조절(調節)하는 주법(奏法)이 있다.

 

손이나 손목 등 몸통과 멀리 떨어질수록 통제력(統制力)이 약화되어 흔들림은 더욱 커진다. 고로 그런 부분에서는 팔의 근육과 관절을 인위적(人爲的)으로 고정시켜 활의 흔들림을 보정(補正)하여 섬세한 피아니시모를 표현한다. 물론 이 정도의 연주법을 구사(驅使)하는 것조차 전문연주자라야 가능하니, 남성이든 여성이든 따로 이런 지휘법을 터득(攄得)하기란 쉽지 않다.

 

지휘봉의 떨림이란 바로 이런 지휘법에 문제가 있음을 증명한다. 피아니시모에서 지휘봉의 떨림이 단원들이나 관객에게 간파(看破)되지 않기 위해, 곡의 흐름과 무관(無關)한 불규칙한 호흡(呼吸), 과도한 지휘 동작이 불필요하게 연속(連續)된다면 지휘법을 다시 공부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음악이나 해석(解釋)을 가졌다 해도, 표현해내지 못하고 빛을 발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게오르그 솔티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현악기 피치카토 지휘

 

시카고 심포니의 게오르그 솔티가 브루크너 교향곡 82악장을 연주한다. 첫 주제에 이어 느린 부분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는데, 멜로디와 맞지 않게 지휘 동작에 절도(節度)가 있으며 비트가 들어가 있는 이유는 현악기 저음(低音) 파트에 피치카토가 나오기 때문이다. 같은 부분에서 카라얀은 여전히 눈을 감고 예의 그 지휘 폼을 유지(維持)하고 있다. 카라얀의 경우는 실황(實況)이 아닌 녹화였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현악기의 피치카토에 연주의 중점이 더해진 곳이다.

 

가령 독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크리스티안 틸레만의 경우, 베토벤 교향곡 해석에서 곡의 전개(展開) 시 현악기 저음 파트에 더욱 무게를 싣는다. 지휘자의 곡 해석 능력의 범주로서, 멋진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카라얀 지휘의 경우 그는 심포니에서 박력(迫力)과 스케일이 큰 웅장(雄壯)함을 추구함으로, 거의 대부분 지휘봉을 든 손목의 관절을 쓰지 않는다. 지휘봉과 팔의 전체 근육을 써 큰 동작을 유도(誘導)해낸다. 지휘봉을 잡은 모양부터 방망이를 잡은 듯 보인다. 이 점이 여성 지휘자들이 간과(看過)하는 점이며, 지휘봉 끝의 떨림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그 문제점 자체도 모르는 듯 보인다. 한편 손목을 주로 쓰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앙드레 프레빈의 경쾌한 지휘는 카라얀의 지휘와 매우 대비(對比)된다.

 

거장들의 절제된 예비동작과 통제력

 

유진 올만디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연주의 차이코프스키 서곡(序曲)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 절제(節制)된 동작 가운데에서도, 단원들이 지휘자의 의도(意圖)와 곡의 흐름을 먼저 알 수 있는 충분한 예비동작의 지휘를 감상(感想)할 수 있다. 반면 국내 오케스트라의 경우, 여성 지휘자가 지휘하는 연주를 보면 곡 내내 무미건조(無味乾燥)함을 느끼는데, 이는 지휘자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反映)되지 못함을 반증(反證)함과 동시, 그 지휘법의 한계(限界)를 증명하기도 한다. 결국 이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의 지휘보다 단원들의 기계적(機械的)인 앙상블이 우선하며 곡을 나열(羅列)식으로 만든다.

 

러시아 음악에서 자주 등장하는 관악기와 타악기가 동시에 치고 빠지는 음과 엇박자나 싱코페이션의 연속적인 리듬을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지휘봉을 쥔 팔의 최대한 출렁거림을 방지(防止)해야 한다. 같은 곡에서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팔의 큰 근육을 이용 예비동작은 먼저 하며, 지휘봉 없이 손가락만을 가지고 곡의 흐름과 강약(强弱), 크레센도 디크레센도를 조절한다. 지휘봉만의 한계를 느낀 그만의 독특(獨特)한 지휘법이다.

 

결국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등장하는 화려한 기교의 심벌즈 연주나, 장대(壯大)한 스케일의 쇼스타코비치의 7번 교향곡에서 끊임없이 이어 나오는 관악기와 타악기의 하모니, 흔들림 없이 이어져야 하는 변박(變拍)의 지휘에서 팔의 출렁거림은 미세한 간극(間隙)을 발생시킨다. 이는 차이코프스키의 “1812서곡 중 나오는 대포(大砲)를 대신한 타악기군 대북의 정확한 타음도 기대하지 못하게 된다.

 

타악기와 현악기 피치카토 주법에 있어서 지휘의 중점

 

타악기군의 주자들의 움직임은 지휘자의 예비동작과 거의 일치(一致)해서 연주된다. 과거 압축성장 시대 우리의 대표적인 교향악단이 미국 순회연주를 간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연주 전 언제나 애국가(愛國歌)를 연주했으며, 심벌즈 연주자가 이 애국가의 클라이맥스에서 멋진 장면을 연출(演出)하는데, 한번은 박자를 놓쳐 그대로 왔다는 전설(傳說)이 있다. 이를 심벌즈 연주자의 실력 부족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만한 멋지고 화려한 예비동작은 지휘자와의 교감(交感)에 의해 연주되는 것으로서, 지휘력 부족이 더 큰 이유이다.

 

예비 사인이 없는 지휘자 아래에서의 타악기 연주자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며 자연적으로 봉에 힘이 실려, 멀리 가는 소리와 분명한 맑은 여운(餘韻)을 만들지 못한다. 교향악단의 타악기군의 맑고 분명한 소리로 지휘자의 실력 유무를 판단할 수 있다.

 

타악기나 현악기의 피치카토를 지휘하는 지휘봉에서, 절제되지 못한 비트와 컨트롤이 망가진 팔 동작은 이미 실패한 연주로 본다. 현악기 보잉의 경우, 가장 잘하는 연주는 불필요한 부분에서는 활을 적게 쓰면서 흐트러진 소리나 알맹이 없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를 미연(未然)에 방지하는 것이다. 이 역시 저비용 고효율의 원리가 적용(適用)된다. 학생이나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과도한 보잉을 구사하다가 박자도 틀리고 말년에는 근육(筋肉)에 무리가 와 고생하는 것을 가끔 본다. 중세시대 지휘의 시초가 바이올린 악장이 활을 들어 박자를 맞추던 것에서 시작되었음은 지휘의 기초(基礎)가 무엇인가의 파악에 도움이 된다.

 

팔 전체와 큰 근육을 이용하면 박자의 흔들림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관절(關節)마다 꺾이며 출렁거리면, 그만큼 비트의 정확성이 떨어지며, 쓸데없는 과도한 동작으로 인해 단원들이 소리를 내야 할 비트 시점(時點)에 혼란이 야기(惹起)된다. 여기에 좌우로 크게 펼쳐지는 무용 동작은 아름다운 하모니의 음악과는 더욱 동떨어지게 된다.

 

손목과 팔의 미세한 출렁거림이 연주에 미치는 악영향

 

다시 마린 알솝 지휘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의 레닌그라드교향곡으로 돌아가 보자.

 

1악장에서 알솝은 지휘봉과 팔꿈치를 이용하여 박자의 흔들림을 최소화(最小化)시키며 무난하게 진행해 나가다가 이윽고 닥치는 느린 부분에서는 충분한 예비로 곡의 흐름을 주도(主導)한다. 여성 지휘의 특성상 손목의 출렁거림을 일정한 비트로 커버하며 변박(變拍)에 대응(對應)한다. 이 부분의 경우 필자의 생각에는 알솝과 달리, 솔티는 연속적인 같은 동작은 극히 자제(自制)했을 것이다.

 

알솝은 1악장 스내어드럼과 현악기의 피치카토와 콜레뇨 부분이 나오자 바로 손목의 움직임을 자제하여 비트의 흔들림을 방지한다. 피콜로의 음정이 정확해야 하지만, 이럴 때 지휘자는 음정보다 박자에 치중(置重)해야 한다. 바로 연이어 관악기들이 솔로를 주고받는데, 이를 스내어드럼의 정확한 타음이 그 오류(誤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지휘자가 멜로디에 냉정해야 하는 이유이다.

 

피치카토를 연주하는 현악기의 수석(首席)주자들은 오른손가락의 예비동작이 지휘자의 동작과 거의 일치(一致)해야, 수십 명 현악기 주자들의 흩어지지 않는 정확한 소리를 만들 수 있으므로, 지휘자는 이를 세밀(細密)하게 요구해야 한다. 이는 국내 모 오케스트라와 전편 칼럼에서 지적했던 국악 전공 지휘자의 성남시향의 문제이기도 했으며, 세기의 대지휘자 카라얀에게서도 발견되는 문제점이다.

 

이 교향곡에서 중요한 타악기들과 관악기들의 솔로 준비는 지휘자의 예비동작과 일치해야 박자에서 어긋남이 없으니, 변박과 변조(變調)에서 극히 반사적(反射的)인 음악적 감각(感覺)이 요구된다. 멜로디의 다양한 변조는 그만큼 고도로 발달된 돌발상황 대처(對處) 능력과 음악적 운동신경이 요구된다. 이를 선도(先導)하고 통제(統制)해야 하는 의무가 최종적으로 지휘자에게 부여(附與)된다. 국내 지휘자들의 교향곡 연주가 의례적(儀禮的)이며 지휘자나 악단의 경력 전시용(展示用)으로, 연주하는 데 의의(意義)가 있는 것같이 보이는 최대의 이유이다. 프로 무대는 학교 내 강당에서 하는 학예회가 아니다.

 

알솝은 음악이 절정(絶頂)을 넘어서고 평상시(平常時) 수준을 회복하자 다시 손목의 미세한 출렁거림이 발생하나 이를 인지(認知)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교향악단의 숙달(熟達)된 연주 기능이 커버하는 느낌이다. 이는 지휘자의 몸동작과 단원들과의 호흡이 맞아 가능한 것 같다. 지휘봉의 과도한 움직임과 떨림을 단적으로 지적(指摘)하면 단원들에게 백해무익(百害無益)한 동작이나 이의 교정(矯正)은 많은 훈련을 요한다.

 

지휘자 비트에 산만함 없이 끝까지 소임(所任)을 잊지 않아야

 

2악장으로 들어서자 알솝은 손목의 사용을 중지(中止)하며 현악기의 하모니에 열중한다. 중간 이후 베이스 클라리넷과 플루트의 앙상블이 펼쳐지는데, 베이스 클라리넷의 저음 소리를 듣지 못하는 비디오 디렉터나 지휘자가 이를 놓치기 쉬운 부분이니, 정확한 사인과 지휘 동작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플루트 소리만 크게 들렸다.

 

3악장의 다소 통속적(通俗的)인 멜로디의 현악기군이 지나가면 역시 현악기의 피치카토 진행이 한동안 계속되므로 지휘자는 이를 놓치면 안 된다. 지휘자가 멜로디의 통속성으로 인해 다소 자신의 취향(趣向)에 맞지 않는다 해도 지휘를 산만하게 하거나, 반대의 경우로 멜로디에 취하다가는 현악기군의 우두둑하는 피치카토 낭패(狼狽)를 경험하게 된다. 악장과 현악기의 수석주자들은 연주 내내 예비동작이 요구되는 피치카토 연주법에서 긴장(緊張)을 놓으면 안 된다.

 

4악장은 3악장과 연속으로 이어져, 곡의 변화에서도 지휘 비트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특히 변박에서의 첫박의 비트는 가뜩이나 복잡한 악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단원들에게 중요하며, 관악기의 받침 위에 선 현악기군의 멜로디가 빨라지기 쉬우니 조심(操心)해야 한다. 이미 쇼스타코비치는 전쟁의 광기(狂氣)를 절규(絶叫)하듯 표현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후기 낭만파 작곡가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의 하룻밤이 연상(聯想)되기도 했다.

 

관악기와 타악기의 찔러주는 악센트 박자에서 약간의 흐트러짐이 발견되는데, 지휘자가 분명한 예비사인을 주었으나 소리가 흩어진 이유로, 장시간 연주로 인한 집중력(集中力)이 떨어진 듯싶다. 리허설 때 이 부분에 대해 모두 특별히 기억하고 악보에 기록하게 할 필요성이 대두(擡頭)됨은, 이런 부분은 악센트라 오류가 바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곡의 엔딩 부분의 클라이맥스에 이은 완만한 리타르단도 부분에서 타악기와 관현악기의 조화(調和)가 중요하므로, 지휘자의 비트에 산만함이 없이 끝까지 지휘자의 소임(所任)을 잊지 않아야 한다. 타악기 주자들의 거침없는 큰 예비동작과 연주는 지휘자의 뜻과 일치되어야 하며, 지휘자는 단원들의 마지막 남은 혼신(渾身)의 연주력을 집중시키고 소진(消盡)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관객의 호응(呼應)을 이끌어낼 수 있다.

 

예비동작이 없는 지휘는 버스 떠난 뒤 손 흔드는 격

 

다시 또 강조(强調)하지만 지휘자의 역할은 자동차의 네비게이션 역할과 유사하다. 고품질의 네비게이션은 운전자로 하여금 운행(運行)에 있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대처(對處)하며, 당황하지 않고 운전할 수 있게 속도(速度) , 매 조건(條件)을 미리 알려준다. 또한 돌발상황이나 길 위의 조건 변화(變化)에 대해서도 침착하게 반응(反應)할 수 있게 제작되어 있으며, 출발부터 도착(到着) 지점까지 전체적인 흐름을 알기 쉽게 유도한다.

 

예비동작을 모르며 그 기능이 낮은 지휘자는 저렴(低廉)한 네비게이션으로서, 이는 세계적인 지휘자의 판단(判斷) 기준(基準)이 되기도 하는데, 예비동작이 없는 지휘를 버스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지휘봉의 출렁거림으로 인해 정확성이 떨어져 음의 최종 목표점이 흐릿해진, 끝이 뭉툭해진 송곳에도 비유할 수 있다. 전장(戰場)의 선두에 서서 대열(隊列)을 이끄는 나팔수의 동작과 소리는 분명해야 한다.

 

필자는 이 불변(不變)의 법칙을 정치, 경제, 사회 특히 음악계 협회장들과 대형 시립교향악단 대표들에게 대입(代入)하기도 한다. 밀실(密室)에서 문외한(門外漢)들이 열심히 나라의 녹을 먹으며 만들어 놓아봐야 그 허점(虛點)이 여실히 드러나게 되어 있어, 음악인들은 가까운 미래(未來)에 또 하나의 시제품(試製品)을 감상해야 될 듯싶다. 일반 사설(私設) 민간단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나 국민의 세금이 투입(投入)되는 곳이니, 평론가들의 의무인 서치라이트 조명(照明)이 자동 센서에 의해 본격적으로 작동(作動)될 수밖에 없다.

 

여성 지휘자에게서 가끔 보이는 지휘봉의 떨림과 팔의 과도한 유연함은 불필요한 연속 동작을 유발(誘發)하여 연주에 불협화음을 조장(助長)하므로, 거장(巨匠)들의 지휘 동작에 절제가 배어 있는 이유를 파악해야 한다. 통제가 안 되어 단원들의 박자에 끌려 다니다가 얼떨결에 엔딩을 하고 박수를 받는 어리둥절한 지휘나, 예비동작의 민첩함이 부족하여 추진력이 떨어지는 지휘는 결국 불완전한 하모니를 연출한다.

 

거장들이 절제 능력을 보유(保有)함은, 교향곡이나 당일 연주의 시간과 곡의 경중(輕重)에 따른 기력의 안배(按配)와 조절에 많은 경험을 보유(保有)했기 때문이다. 지휘봉의 정확한 비트와 팔의 과도한 유연함은 서로 대척점(對蹠點)에 서 있으나, 어찌됐든 알솝의 연주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유튜브에서 어떤 여성 지휘자 연주를 골라 추천(推薦)하니, 재미삼아 보기 바란다.

 

알론드라 데 라 파라(Alondra de la Parra en répétition avec l'Orchestre de Paris)

 

https://www.youtube.com/watch?v=YfKBfH0g_Hc

 

이 정도로 여성 특유(特有)의 온몸의 유연함을 이용한 지휘 동작은 남성 지휘자에게는 없는 여성만의 특장점(特長點)이기도 한데, 페미니즘이 '여성의 특질(特質)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파생(派生)한 단어인바, 진정한 페미니즘의 실현녀(實現女)가 아닐 듯싶다. 그러나 예비 동작은 상당히 부족하여 단원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몸동작이 동시에 반응한다. 동영상과 음성을 분리(分離)했을 때, 동영상이 앞서 플레이되는, 마치 고장 난 DVD플레이어처럼 보여야 한다.

 

최영철 / 한국첼로학회장, 카메라타 서울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음악평론가

 

월간 음악평론지 “REVIEW" 20168월호 Criti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