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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들의 호흡,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Conductor 2016. 6. 2. 22:28

지휘자들의 호흡,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지난 5월호 지휘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최영철 칼럼니스트가 쓴 글이 큰 화제가 되었다. 그동안 누가 지휘를 잘하는지, 도대체 그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를 두고 고민하던 전공자와 음악애호가들은 이 글을 읽고 비로소 무릎을 쳤다고 한다. 이번 호는 연주회와 지휘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최영철 평론가를 졸라 호흡에 대한 내용을 알고 싶다는 독자들의 물음에 답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편집자 주-

 

월간 리뷰 5월호에 허탄하게 게재했던 지휘자와 지휘법의 문제를 조금 더 심층적(深層的)으로 분석하자면, 연주에 있어 가장 중요한 호흡(呼吸)의 문제가 대두(擡頭)된다.

 

모든 음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기본기(基本技)이며, 지휘에서는 지휘법이자 타법이다. 이 바통 테크닉이 음악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구사(驅使)되어야 비로소 지휘자의 음악적 역량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음악적 해석 능력이 뛰어나고, 총보를 통째로 외운다 해도 그를 표현해낼 바통 테크닉의 빈약(貧弱)함은 무대에서 성공적인 연주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필자가 전편에서 한스 스바로프스키 문하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알렉세이브 교수의 가르침 중에서 오케스트라 전공 악기 출신의 지휘자가 타 전공보다 유리하다는 점을 주지(周知)시킨 적이 있다. 바로 이 점이 지휘자의 음악적 호흡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뛰어난 경력의 관현악기 전공 출신 지휘자들은 호흡을 알기 때문이다.

 

지휘자의 호흡은 가까이 있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가시거리(可視距離) 내에서나 확인할 수 있다. 관중석에서는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독주 악기를 다루는 솔리스트의 호흡은 무대 밖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현악기 주자의 호흡과 관악기 주자의 호흡은 약간 다르다. 지휘자는 이를 알맞게 버무려 중용(中庸)을 취해야 하며, 자신만의 음악적 호흡을 전달(傳達)하여 단원들로 하여금 음악적 일체감 속에서 연주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호흡을 모르는 지휘자는 자신의 손과 바통만 휘두르면 음악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음악의 호흡에 따른 쉼표와 연결부 또한 클라이맥스로 향하고, 엔딩으로 향하는 지휘자의 호흡은 관현악기 솔리스트의 호흡과 거의 일치(一致)한다. 이와 동시 작곡자의 의도와도 일치되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이나, 지휘자는 또 다른 창작 예술가이므로 의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자연히 호흡과 일치한 바통 테크닉과 몸동작이 따라야 하며, 이를 보고 단원들의 호흡도 음악적 동질감 속에서 비로소 일치된 하모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 호흡도 지휘자의 의무인 예비 동작에 포함된다.

 

연주가 이어지는데 바통은 멈춰있다거나, 쉼표에서 계속 바통을 움직인다거나,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바통의 움직임에 변화가 없다거나, 엔딩으로 향하는데 바통은 곡의 처음과 똑 같은 동작을 보인다면 이는 아마추어 지휘자이므로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오케스트라 수석주자가 솔로가 끝나 잠시 쉼표를 호흡을 하는데, 바통이 움직이면 관객의 시선은 지휘자의 동작에 뺏겨 음악의 완성도(完成度)가 떨어진다. 시종일관 지휘단 위에서 자신의 동작에만 몰두(沒頭)하는 지휘자는 결국 오케스트라의 전체적인 하모니를 망치고 만다.

 

가령 마리스 얀손스의 지휘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동작이 있다. 곡의 진행이 피아니시모로 접어들자 지휘의 모든 동작을 최소화하면서 몸을 낮추고 지휘봉을 아예 왼손으로 옮겨 잡는데, 이 동작이 바로 극도(極度)의 피아니시모를 연출하기 위한 지휘자 호흡법의 일종이다. 이는 단원들은 물론 객석까지 피아니시모의 감동을 최대한 느끼게 하는 지휘법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휘단 위에서 장시간 동작을 멈추고 단원들을 노려보는 지휘자도 있는데, 곡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이런 동작은 단원들로 하여금 자율적(自律的)인 연주가 아닌 강압적(强壓的)인 시선을 의식하게 하여 도리어 음악을 부자연스럽게 만들며 기계적으로 만든다. 시카고 심포니의 리카르도 무티가 그런 경우인데, 그의 위압적인 태도는 도를 넘어 단원들과 관객들로 하여금 연주의 몰입(沒入)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는 관현악기 전공이 아닌 듯하다.

 

여하튼 세계적인 지휘자의 동작에서 보여지는 호흡 동작의 세분화(細分化)된 다양한 연출은, 단원들에게 선지자(先知者)의 역할도 함으로 편안함과 여유를 찾게 하여, 그로써 음악의 흐름이 한껏 정돈된다. 호흡의 기교만으로써도 음악의 흐름을 선도(先導)하는 것이다.

 

국내 젊은 지휘자들에게서 한결같이 발견되는 모습은 이 호흡에 여유가 없어, 바통이 아무 때나 움직이며 쉼표를 연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음악의 흐름에 있어 쉼표도 음악의 일부이다.

 

곡의 엔딩 후에 몇 초 간, 길게는 십여 초 간 모든 동작을 정지(停止)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연주가 끝난 다음, 음의 여운(餘韻)을 흐리는 쓸데없는 동작으로 오케스트라나 관객의 감동을 무실(無實)시키지 않으려는 의미이다. 이를 곡의 진행 전체에 확대하면 이해가 쉽다.

 

패션모델이 런웨이에서 자신의 잘난 얼굴을 내보이면 그 옷의 진가(眞價)는 사라지며, 이 모델은 곧 퇴출된다. 고로 관객의 시선을 얼굴이 아닌 패션으로 돌리려 일부러 무표정하게 찡그리기까지 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단원들 사이에도 통용(通用)되는 이치이다. 단원의 곡중 솔로가 아름답게 흘러나오는데, 지휘자가 과도(過度)한 몸동작과 바통 테크닉을 구사하여 자신한테로 관객의 시선을 끌면 이는 낙제점의 지휘이고, 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호흡이란 자연스러운 몸동작의 연장이며, 이는 음악적으로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음악의 흐름에 따라 가쁘게도, 느리게도 흘러간다. 이에 따라 바통 테크닉과 몸동작도 일치되어 흐르게 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이 동작은 반드시 단원들을 앞서, 먼저 예비 되어야 한다.

 

왜 온몸을 쓰는 지휘 동작이 필요한가는, 전편 칼럼에서 전술(前述)한 바와 같다. 그리고 기술적인 여러 바통 테크닉을 예시하며 국내외 지휘자들의 예도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휘에 있어 호흡의 중요성이 음악에 미치는 직접적인 점을 기술하는 중이다.

 

세계의 모든 클래식 팬들이 선호하며, 가장 많은 연주 회수를 자랑하는 교향곡으로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이 있다. 이 곡 1악장 서두(序頭)에서는 지휘자가 극도의 자제(自制)를 보이며 솔로 연주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는 동작을 볼 수 있다. 이 지휘자는 관악기 솔리스트들과 같이 지휘단 위에서 숨죽인 호흡을 하는 중이다. 심지어 스코어에도 눈과 손이 가지 않는다. 솔로가 끝나면 같이 지휘 동작도 그치고, 다음 멜로디로 전환(轉換)되기 전 예비 동작에서야 비로소 움직인다. 이상은 일류 지휘자의 호흡이자 동작이니 참고하기 바란다.

 

이론으로만 배운 지휘자는 손만 움직이다가 비트를 놓친 관악기와 현악기의 불협화음을 연출하기도 하는데, 작은 바통의 움직임을 무엇으로 커버하는가가 관건(關鍵)이다. 바로 몸동작과 연결된 호흡으로 예시하는 미세(微細)한 표현이다.

 

전편에서 모 지휘자가 엔딩에서 현악기 보잉의 위치를 보지 못하고 먼저 끝낸 것을 지적한 바 있는데, 이 점이 바로 지휘자와 단원들 간 호흡 불일치의 경우이다.

 

지휘자는 오직 타인의 소리를 이끌어내어 감동을 주어야 하는 직분이다. 그런데 그들의 음악성을 최대한 엑기스화()하여 음악적 흐름을 만들어내야 함에도, 뻣뻣한 팔과 손동작, 굳은 어깨와 몸으로 무슨 음악을 만들어내며 호흡을 일치시킬 수 있는가? 올해 신년음악회를 지휘한 모 지휘자의 마비된 한편 팔은 단원들과 관객들의 불필요한 시선을 끌어 음악의 흐름에 방해가 된 바 있다.

 

관악기의 곡중 솔로를 연주하는 단원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음표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어려운 호흡을 하고 있는데, 지휘자는 강 건너 불 보듯 비트를 맞춘다며 바통을 흔들어 곡의 흐름을 방해하는 지휘자, 현악기 수석주자 솔로의 현란한 보잉과 움직임을 보지 못하며, 보잉의 위치도 파악하지 못하는 피아노 전공이나 작곡 전공의 지휘자는 음악을 망치기 쉽다. 다시 말하지만 모름지기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관현, 타악기를 어느 정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간단한 지휘 동작 몇 가지만 배워 지휘단 위에서 춤을 추는 미숙(未熟)한 지휘자와, 이도 못해 몇 가지 동작만 반복하며 말러 교향곡을 연주하는 지휘자도 있다. 또한 어느 콩쿠르 출신 지휘자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빠른 3악장에서, 관악기 솔로 연주 시작과 동시에 사인 없이 팔이 같이 나가는 아마추어에 불과한 지휘도 버젓이 방송을 탄다. 호흡 다음에 연주가 되는 기본도 모르지만 한국의 대표적 지휘자로 알려져 있다.

 

자연히 호흡을 모르는 지휘자는 협연자와의 불협화음 발생과 불일치를 이루게 된다. 연주자의 호흡과 쉼표를 모르니, 쉬어야 할 부분에서의 불필요한 바통 움직임은 협연자의 눈에 거슬리고, 단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음악을 망치게 된다.

 

음악을 선도하는 예비 동작으로 흐름을 단원들에게 알려주고, 또한 곡의 중요한 솔로 부분을 위한 사인은 솔리스트의 음악과 호흡을 배려하여 관객이 시선이 자연스럽게 옮겨가게 하며, 불필요한 지휘 동작은 최소화시켜 음악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모든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리더의 역할은 조직원 각자의 개성을 살려내, 최선으로 이끌어내고 이를 중용(中庸)으로 컨트롤하며 목표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길만을 고집하는 강압적인 지휘로는 전편의 예에서 지적했듯, 완벽함을 추구하며 지휘계의 전설이라 일컬어지는 카라얀의 지휘에도 지리멸렬(支離滅裂)하는 베를린필의 연주를 만든다.

 

오케스트라에서 진정한 카리스마란 선지자 역할의 지휘자를 따라, 각 단원들이 자연스럽게 최고의 개성과 실력을 발휘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단원들은 물론 협연자와도 따로 노는 지휘자는 호흡도 바통도 몸동작도 따로 놀게 되는데, 이는 예민한 관객에게는 바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휘자는 아무리 피아노 연주나 음악 분석에 능하고 작곡자의 의도를 파악한다 해도 표현해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를 우리 속담에 안에서 새는 쪽박은 밖에서도 샌다 하며,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지혜(智慧)라야 지휘단에 설 수 있을 것이다. 기초 과정이 부실(不實)하면 그 뒤는 볼 필요도 없다. 끝으로 음악은 틀에 박힌 형식이 아니며, 체계화된 시스템 안의 고착화(固着化) 과정도 아니므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음악의 틀이 몸에 배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즉 무슨 전공이든, 어떤 교육을 받든, 어느 학교를 나왔든, 오케스트라 지휘는 천성적(天性的)으로 타고난 재질(才質)의 수련(修鍊), 현장에서 경험으로 쌓여야 비로소 하모니가 완성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불가능하니 수십 년 지휘단에 서도 아마추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월간 음악평론지 “REVIEW" 6월호 Criti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