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타 서울 SNS/음악지 칼럼

그리고 나머지도 소음이었다.

Conductor 2010. 7. 14. 07:36

음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음악을 대하는 대상의 문제이다.

즉 예술이란 극히 주관적 형태의 정신 영역이라는 뜻이다.

지구상 누구든 자신은 감동이 없는 음악이지만, 어느 작품이나 작곡가의 음악은 위대하다는 보편타당성의 원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나머지는 소음이다”라는 책에 대해 생각해본다.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힌데미트 등 이 책의 등장인물과 현대음악의 반어법적 언어의 유희를 보며 왜 자신의 생각과 음악에 대해 방어적 주장이 등장하는가에 대한 것과, 이를 통해 또 하나의 생업에 얽매인 듯한 산만한 주제의 나열형 기사의 한계도 생각해 보려 한다.

 

“음악이란 우열이 없다”라는 말과, “음악은 음악일 뿐입니다”라는 말도 역설적으로 저자나 기자의 자가당착적 요소를 꼬집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매스컴의 가장 난제인 공정성 문제의 지장물에 걸린 이가 연주계와 음악의 우열을 논하며 치우친 시각을 활자화하는 그 자체도 소음이기도 하고...

조금 더 발전해 나간다면 각 분야에 걸쳐 1등 지상주의의 덫에 걸린 이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모 매체의 이율배반적 실례일 수도 있다.

인간의 모든 문명 중에서 가장 순수하다는 예술, 그중에서도 음악은 그 누구에게든 우열을 가리지 않는 극히 주관적인 세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기서 온 지구상의 클래식 팬들이 지금도 가장 숭배하는 베토벤의 운명 시 남긴 말을 인용해 본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 이후 그를 후원하던 귀족들이 몰락하자 더욱 쓸쓸한 만년을 보냈다.

온갖 병고에 시달리던 그가 임종의 자리에 누운 것은 1827년. 원래 카톨릭 신자였으나 신앙을 멀리했던 그는 임종에 가까워 세례의식을 갖는다.

창밖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그는 죽어가면서

"여러분 박수를 보내라. 이제 희극은 끝났다."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57세였다.

역경과 불운에 맞서 이긴 위대한 예술가 베토벤은 운명 시에 가서 자신만의 음악 인생에 대한 고백을 희극이었다며 맺는다.

후세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맹목적 우상화에서 벗어나는 두려움과 불이익을 피하며, 자신이 가보지 않은 영역의 접근을 사전에 차단하는 모종의 세속화이기도 하고...

그의 진솔한 유언에 의하면 그의 인류의 심금을 울렸던 위대한 작품들이 희극이었다는 고백인데...

 

베토벤의 이 유언은 현대에 와서 마침내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 타당성으로 다가온다.

클래식 본류의 흐름에도 현대음악이라는 장르는 기존 음악 형태의 고정화된 관념을 벗어나고 있다.

 

“아름다운 음악을 믿지 마세요”

“동물도 필요 없습니다, 음악도 그림도 필요 없습니다.”

"광고를 믿지 말라"는 광고가 나와 눈길을 끈다.

바로 모 생수회사의 비무장지대를 배경으로 한 광고 내용이다.

최근 선보인 이 광고는 이렇게 말한다.

"소비자의 눈을 현혹시키는 광고 속의 음악이나 조명과 같은 그 어떤 장식도 믿지 말라"

그리고 "50년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청정 지역 DMZ에서 취수한 생수 광고조차 믿지 말고 깨끗한 물맛만 믿어라"는 반전이 이어진다.

 

이 책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과 촌철살인과는 거리가 먼 지면 채우기용 주제 산만한 요란한 소개에 대해 “그리고 그 나머지도 소음이었다” 라는 말로 결론을 내리면 어떨까 생각한다.

음악 더 나아가 예술 등 모든 문화의 장르도 햄릿의 대사 한 마디로, 50년 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고요한 비무장지대의 대자연은 넘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악성 베토벤은 빈의 중앙묘지에 고요히 잠들어 있다.

 

“나머지는 침묵이다” 


2010.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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