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타 서울 SNS/음악지 칼럼

서울시의 비리 척결을 환영하는 음악계의 한 시각

Conductor 2014. 8. 6. 18:27

엊그제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직비리와 관피아를 근절(根絶)하기 위해 강도 높은 혁신 방안을 추진하여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강화와 퇴직공무원 취업도 제한한다고 했다. 직무 관련성이 없는 공직자의 금품수수도 적극적으로 처벌하며, 3급 이상 공직자들은 맡은 업무가 본인, 배우자, 가족과 이해관계가 있는지 매년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박 시장은 "청렴에 있어서만큼은 서울시가 시민의 기대 수준에 부응하고 다른 공공(公共)기관의 기준이자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곳곳의 적폐(積弊)와 부정을 타파하자는 국가개조 붐이 일어나니, 박 시장 같은 순발력 있는 정치 감각의 소유자는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동안 손을 대지 못하던 음지(陰地)에 서치라이트를 환하게 비추어, 아시아 최고 부패국가의 오명(汚名)을 벗어야겠다는 강한 의지에 시민들은 박수를 보낸다.

 

관료주의 적폐, 예술에는 없는가?

 

필자가 음악인이니만큼 음악 예술과 관련해서 몇 곳을 살펴보려 한다.서울시 산하 문화예술단체 운영과 기금 집행에 있어, 서울 시장의 행정 영역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여기에까지 시장의 관심을 붙들어 둘 수 있겠는가? 더욱이 일반인들로서는 알 수 없는 고도의 전문성 분야이므로 해당 음악인들은 익히 잘 알고 있지만, 거대한 관료주의(官僚主義)에 눌려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을까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이 오랜 관행(慣行)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다거나 가만히 두어서 해결될 사안은 아닌 것이다.

 

일단 각 문화정책은 전임 시장들의 실패한 문화정책을 그대로 답습했는지, 예술인들이 공감할 새로운 대안(代案)과 비전을 얼마나 제시했는지에 대해 누가 이를 검증할 것인가? 이 역시 전문성이 없으면 불가능한 영역이므로 지금까지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문화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온 여러 원인 중의 하나이다.

 

포퓰리즘 초대권 살포, 예술가 생존 기반 흔들어

 

본인도 한때 KBS교향악단에 몸을 담았던 전공자로서, 일단 매스컴으로부터 가장 뜨거운 관심을 끌었던 서울시향의 지휘자와, 단 운영에 있어 방기(放棄)사항은 없는지에 대해 검토해본다. 이미 비평가들이 서울시향의 현재와 비전에 대해서 방향을 제시한 바 있는데 개선된 것 같지 않다.

 

주요 연주회 때의 외국 고액 용병(傭兵) 문제와, 정부와 민간의 고질적 문제인 초대권 폐지 정책에 역행(逆行)하는 대형교회 등의 순회 연주회가 표본이다. 이런 포퓰리즘이 박 시장 측도 아무렇지도 않게 인식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니만큼, 클래식을 대중화하는 것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이런 무료 음악회의 확산은 정부가 추진하는 초대권 없애기 운동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어서 정책 혼선을 야기하고 있으며, 무분별한 초대권 살포로 인해 자본력 없는 민간이 고사 직전에 이르렀다.

 

안타깝게도 정명훈 지휘자의 후견인(後見人) 역할을 하던 형() 정명근씨가 그동안의 부정과 부패로 구속되는 불상사도 있었고, 당시 서울시향 대표가 운명(殞命)하기도 했으나, 음악인들은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스스로 개선하기를 기대했고, 그만한 충분한 기간이 흐르기도 했다. 우리 음악계에 정 패밀리가 끼친 영향은 지대(至大)하다.

 

하지만 그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우리 음악계가 언제까지 과거 영광만 기념하며 그들에게 의지(依支)해야 하는지는, 이번에 치러진 선거에서 거물, 지연(地緣)을 내세운 구태의연한 전략으로 패한 야당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변화하는 민심(民心)을 읽어야 한다. 이제 정산(定算)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정명훈 지휘자 큰 역할, 후배에게 길 터주는 리더십 보여줘야 할 때

 

정명훈 지휘자의 제 1기 서울시향은 그동안 매우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성과를 발판으로 내실(內實) 있는 전진을 해 나가야할 제 2기에 들어섰다고 본다. 지금같이 국고의 막대한 지원에만 의존하는 전시성 운영은, 민간단체들과의 효율성 문제나 형평성 문제에 있어, 민주적(民主的) 절차를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에 매우 심각한 위기(危機)를 초래한다고 본다.

 

깊은 속내를 가진 정치가들이니 알 수 없으나, 혁신대책 발표의 숨은 의중(意中)은 시장이 직접 손을 대지 않는 자연스러운 평정을 기대(期待)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박 시장은 몇 년 전의 정명훈 지휘자 사태 때에도, 지휘자와 서울시향의 여러 적폐가 언론에 발표되어, 손대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행운이 따랐다.

 

하지만 이런 운()을 기대하기에 현실은 매우 열악하다. 이미 전임 시장의 궤적(軌跡)인 제2 롯데월드는 시내 곳곳에 싱크 홀을 만들고 있으며, 관계 전문가들에 의하면 그 미래도 매우 어둡다. 막대한 국고의 재정 지원을 등에 업은 지휘자와 서울시향으로 인해, 민간단체들이 땅속으로 사라지는, 음악계의 제2 롯데월드 사태를 막아야 한다. 마치 거대 재벌 슈퍼마켓이 영세 골목 상권(商圈)을 장악해 나가는 형국(形局)이다.

 

견제 없이 한 곳으로 집중된 막강한 권좌(權座)의 정치 지도자나 지휘자 시대는 이미 지났다. 궁정의 하인이었던 지휘자가 어떻게 음악의 운명을 좌우하는 주인으로 신분상승을 이루었는지, 더 나아가 어떻게 음악계의 최고 권력자가 되어 '마에스트로' 이미지를 만들어 냈는지 추적한 노먼 레브레히트의 저서가 있다. 저자는 지휘자에 대한 숭배의 배경을 20세기 급성장한 거대 음악 산업에서 찾는다. 이 시기 카라얀으로 대표되는 지휘자들의 권력욕, 우상을 바라는 대중의 심리가 만나 '제트족 지휘자'라 불리는 소수의 스타 지휘자들을 양산했다는 것. 소수 권력이 신인(新人) 지휘자의 등장을 원천 봉쇄하면서 연주의 질이 천박해졌고, 이것이 클래식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이제 정명훈 지휘자의 그동안 고국에서의 노고(勞苦)에 박수를 보내며, 세계적 지휘자의 이름에 걸맞게 마음껏 큰 바다를 유영(遊泳)하는 국제적인 음악가로 풀어줘야 한다. 그리고 국내외 과포화 상태의 실력 있는 자국(自國)의 지휘자, 연주자들을 영입, 무한 개방하여 자생력(自生力)을 키우고, 소외층 없이 모두의 축제가 되는 예술의 본질과 자유를 만끽하게 해주어야 한다. 기존의 예산(豫算)이면 얼마든지 가능하고도 남는다.

 

끝으로 서울시가 주관하는 스프링 축제 등 각종 문화행사나 기금 집행에 있어, 심사에서부터 오랜 동안 연결되어 단골로 빠지지 않는, 음피아와 관피아가 있다면 이도 하루 빨리 척결(剔抉)해주기 바란다. 아무리 좋은 물이라도, 고이면 반드시 썩는다.

 

문화저널21 칼럼 2014.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