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타 서울 SNS/음악지 칼럼

홈닥터 심층 분석 시리즈 Q&A

Conductor 2014. 10. 18. 08:08

[탁계석, 최영철의 홈닥터 심층 분석 시리즈]

[ 탁계석 블로그]에 eventstage 아이디로 長文(장문)의 댓글 질문을 보내와 최영철 홈닥터님의 의견을 듣는다.

Q eventstage : 인구 5, 000만이 채 되지 않는 나라에서 음악가(연주자)는 수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위해서는 부정적인 현상 알리는 것도 방법이죠>

최영철: 이미 구미에서는 적정 수준의 음악인들로 자연스럽게 조정이 되고 있는데요. 전공자는 줄고 음악을 즐기는 아마추어 비전공자 수가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문화선진국이니 국민 개개인의 이해도가 높아 가능한 부분이고요. 우리나라도 이런 추세로 향하고 있습니다. 과포화 상태의 음악인들의 수를 수치상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기존 음악인들에게 예의는 아니나, 냉정한 현실 하에서 볼 때에 공공 부문의 취업자나 정식 음악 관련 교직원, 그 외 자립한 사회음악 분야나, 음악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한 계층이 적정 수준일 겁니다.

지금은 타 분야보다 더 심각한 과포화 상태이고요. 그러나 기득권 계층이 공고히 구축해놓은 교육 문화의 현실은 단순 수치상의 적정 수준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데, 즉 과거에도 그랬듯이 진정한 음악인들은 도리어 설 곳이 없어 도태되는 현상도 발생합니다. 자연적인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란 바로 모든 부정적인 면을 자세히 알려 더 이상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Q : 지금 예술대학 정원은 적당한 걸까요? 예술가가 되기 위해 예술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요?

최영철: 정부나 대학 측에서 시행하고 있는 예술대학 몸집 줄이기는 그동안의 정원에 거품이 끼었다는 자백이지요. 예술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의 목표가 오직 대학 진학에만 있는 경우가 많아요. 진정한 예술가란 일단 예술성을 자타가 인정한 후 사회 환경을 넘어설 수 있는 심오한 예술혼이 요구되는데 반해, 매년 배출되는 수많은 예술인들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덕목이 되고 말았지요. 기존의 예술가도 마찬가지이니, 이제는 모든 것을 샅샅이 밝혀 예술 소비자들에게 냉정한 판단을 하게 해야 합니다.

Q : 요즘 한국의 예술대학은 예술 관련 직장을 얻기 위한 직업학교 수준 아닌가요?

최영철: 종합대학 내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한데, 예술의 본질이나 예술적 양심은 도외시된 채 취업이 최우선 과제이자 성공 목표로 자리 잡고 있지요. 예술대학이 종합대학에서 분리되어야 가능합니다. 예술이 다른 인문, 사회 계열의 행정직에 의해 일괄적으로 단순 무식하게 재단되는 현상은 오래 되었지요.

<예술이 사회 리더 기능 못하면 인력 시장의 한계 못 벗어나>

Q : 예술시장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을 하는 예술가가 몇 명이나 될까요? 누군가 시장을 만들어 모셔가기를 기다려서야 시장이 만들어질 리가 있나요?

최영철: 예술시장이란 같은 예술적 감각을 가진 이들이나 최소한 예술의 이해가 가능한 수준의 계층이 형성되어야 가능합니다. 이른바 메세나 그룹들이 선도해야 하고요. 그렇지 않더라도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정도는 파악하는 수준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그 이해가 보편화될 수 있게 이런 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중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예술은 언제나 기업이나 정부의 홍보용 전시물에 지나지 못하며, 새벽의 인력시장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술과 문화가 사회를 선도하는 기본 틀이 무너진 현상인데, 예술인들 자체가 자초한 경향도 있고요.

Q : 19세기 유럽의 음악만으로 만들어 내는 소위 "클래식 시장"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을까요?

최영철: 이미 구미에서는 사양길로 접어든 지 오래지요. 특수 계층만 이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는 듯합니다. 음악회장에는 대부분 노인들만 눈에 띕니다. 음반이나 웬만한 연주 실황은 바로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며, 악보도 무료로 다운이 가능하지요.

클래식의 분야를 넓히는 새로운 기획이 필요합니다. 대중음악 식의 클래식 확장의 뜻보다 각 문화와의 통섭의 개념도 필요하고요. 한 곳에 성을 쌓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는 옛말도 있듯이 계속 새로운 기획과 발전을 도모해야 합니다.

 

Q : 예술가들이 이 모든 문제를 정책에 미루는 한 상황은 더 급격하게 나빠질 겁니다. 이미 예술 시장의 태반은 공공기관의 관납시장입니다. 결국 공무원들이 예술계의 게이트키퍼가 되었습니다.

최영철: 공무원들은 전문지식이 없지요. 또한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이동합니다. 자연적으로 근시안 정책과 복지부동, 전시행정에 매몰되고 맙니다. 이에 따라 공공의 지원금을 필요로 하는 예술 기회주의가 판을 치고요. 자연히 심도 있는 예술 정책이나 긴 안목의 예술 시장 개척은 도리어 방해를 받아 수몰되고 말지요.

정책의 방향이 공무원의 甲 행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한 이의 해결은 요원합니다. 다만 예술인들이나 사회가 이의 환기를 필요로 하며, 잘못된 방향에 전조등을 환하게 켜, 정치의 족쇄가 영향을 끼치지 않는 예술 전문 인력이 장기적으로 행정을 주도하게 하면 되겠지만, 정치가의 편 가르기 식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면 바로 무산되고 맙니다.

<배가 침몰하면 체면, 위신 버리고 빠져나와야, 눈치만 살피면 붕어빵 문화>

Q : 민간의 형식을 띤 문화재단은 공무원 조직보다 더 융통성이 없고 제약이 심한 것이 현실입니다.

최영철: 공무원 조직은 이른바 평생직입니다만 문화재단은 초치의 형식이거나 공조직보다 느슨하지요. 문화계는 끼리끼리의 연줄이 막강하게 작동합니다. 자연히 배타적이 되며 한시적인 계약 기간 안에서 자신들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려 합니다. 예술 환경이 척박한데 자리 보전이 우선이지 무슨 예술 운운 하겠는지요?

문화재단과 밀약에 의한 대학, 문화단체 등 공공 지원금 유용 사태가 심심찮게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이유이고요. 일반 예술가들의 자금력 부실을 핑계로 陰地(음지)의 거래가 자행되는 것인데, 이의 해결 또한 완전히 투명하게 공개된 외부 전문 예술인들에 의한 감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 문화정책에는 감리 과정과 부실에 대한 처벌 규정이 손을 쓰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Q : 예술을 둘러싼 환경은 물론 예술의 본질, 우리 시대 예술의 의미를 깊이 따져 묻고 예술가 스스로 변화를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제가 문화정책과 관련된 일을 할 때 작가, 예술가들에게 자주 호소한 것은 예술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영철: 아주 명쾌한 지적입니다. 오랜 악습과 전통이 쌓여 세월호 사태를 낳았지요. 문화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술인 모두가 철저히 자각하여 자신의 본분과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하는데, 자신의 운명을 타인에게 의지한 채, 공공만 쳐다보고 있는 형국이니 부작용이 계속 부작용을 낳는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배가 침몰하면 어른이라면 최대한 자신이 스스로 빠져나오려 해야 정상이지요. 일단 체면, 위신 내던지고 동료의 눈치를 살피는 압박 현상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예술의 본질은 개성인데 개성이 다 죽었잖아요. 줄줄이 한 줄로, 한 목표를 향해 죽기 살기로 향하는 한, 예술은 후진국 형 붕어빵 손수레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본 기획 시리즈에 애정을 갖고 질문하여 주신 ‘eventstage’ 님께 거듭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