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타 서울 SNS/음악지 칼럼

KBS교향악단이 로마시대의 검투장인가?

Conductor 2014. 9. 6. 12:14

일시 봉합(封合)되어 한시적으로 운영되던 KBS교향악단 문제가 2년의 유예(猶豫) 기간이 지나자 다시 갈등이 불거졌다는 소식이다.

 

여러 법적, 행정적 문제들이 얽힌 가운데, KBS와 단원들은 또다시 음악 외의 무수한 난제(難題)들 앞에 서게 되었다.

 

법인 소속으로 남을지, KBS로 원대복귀(原隊復歸)할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양편 다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

 

KBS 입장에서는 예산 절감(節減)이 최대의 목표였으나 어정쩡한 법인 체제로 인해, 도리어 예산이 더 소요되는 상태이니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되었고, 단원들 입장에서는 매년 몇 프로씩의 강제 퇴직(退職) 규정이 시퍼렇게 적용되는 재단법인에 남고 싶지 않다.

 

이미 서울시향에서 시행(施行)되고 있는 세계적으로도 휘귀(稀貴)한 이 내규(內規)로 인해, 외부에 비치는 화려한 공연과 달리, 단원들은 동료들 간의 살벌한 경쟁 체제 안에서, 매년 자기 차례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원형 탈모증, 위장장애 등의 극심(極甚)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연주자 입장은 온 세상 어디라도 같다.

 

좁은 음악계에서 수시로 만나 같이 연주하는 연주자들이니 그 사정을 모를 리 없다.

 

단원들은 KBS 소속으로 원대복귀를 원하나, 이미 그 사이 사측은 교향악단 직제(職制) 자체를 없애, 돌아올 길을 막아버렸다.

 

이에 계약에 의한 파견 기간이 끝나 복귀하겠다는 단원들에 대해, 사측은 일정 교육을 통해 일반직으로 분산 배치하겠다는 강공책(强攻策)으로 맞서고 있다.

 

<KBS교향악단은 국가의 대표(代表)였던 국립(國立)교향악단이다.>

 

원래 국가를 대표하던 국립교향악단이 왜 이런 수모(受侮)를 겪으며, 공무원들의 탁상 행정에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비참한 형국(形局)이 되었는지, 그동안 우리 문화 수준과 문화융성의 기치(旗幟)가 깃발만 요란했던 것인지, 이쯤 와서 국민들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를 어디까지 용납(容納)해야 할 것인지 따져봐야 할 듯싶다.

 

필자는 젊은 시절 한때 KBS교향악단 주가(株價)가 국내외로 고공 행진할 때 몸을 담았다.

 

하지만 곧 오전 오후 연습의 격무(激務), 정식 연주 아닌 KBS 내의 사소한 지방 순회 연주회, 수시로 있던 정부 최고위층 행사(行事)의 접대(接待) 연주 등에 동원되며, 파김치가 되어 돌아올 때마다 중세시대(中世時代)를 연상했다.

 

녹초가 된 정신과 육체로 한가하게 자신만의 음악을 펼친다는 것은 한낱 꿈에 불과했다.

 

교향악단원이 자신의 기량(技倆) 향상을 위한 정기적인 독주회와 앙상블 연주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단원의 개인 기량은 날이 갈수록 피로감에 쇠퇴(衰退)할 수밖에 없으며, 쇠퇴한 단원은 내규에 의해 매년 퇴출(退出)되고, 대기하고 있던 잉여 젊은 인력으로 대체(代替)된다.

 

이런 비효율적(非效率的) 임기응변의 보여주기 식 행정으로 인해, 기량이 출중하던 단원들이 퇴출되어 오랜 전통의 구미 저명 교향악단의 깊은 소리는 포기해야 하니, 용병(傭兵)을 수입해야 한다.

 

<타율에 의한 예술과 삶이 무슨 의미(意味)가 있는가?>

 

이후 이런 타율적(他律的)인 음악생활은 나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생 선택인 예술에서, 단순히 생존(生存)을 위한 직업 외에는 의미가 없다 판단한다.

 

그리고 자율적인 나만의 예술혼을 가지려, 선후배들의 만류에도 그 당시로서는 무모한 다른 시도(試圖)를 한다.

 

지금에 와서 나만의 결산(決算)을 해보니 그 때의 결정이 옳았으며, 그 순간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는 것을 확인한다.

 

물론 다양한 사회이니 나와는 다른 좋은 케이스도 많겠지만, 예술에서의 타율이란 곧 사망을 뜻한다는 의미이다.

 

로마제국 시대 검투장 안의 검투사들은 피를 흘리며, 상대를 죽여야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관중들은 싸움에 진 검투사는 죽이라며 함성을 질렀다.

 

홀로코스트의 유태인 수용소 내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동료들이 가스실로 끌려가는 걸음에 아름다운 선율을 제공하며, 그 대가(代價)로 역시 자신의 생명을 하루하루 연장했다.

 

이를 즐기며 쾌감(快感)을 느끼는 인간들도 역시 같은 인간들이었다.

 

인간의 휴머니즘과 문명이 나아졌는지 확인해본다.

 

현 중동의 이슬라믹 스테이트, IS는 사람을 파리 죽이듯 죽이며, 길 가는 민간인을 무차별 사냥하고, 강간, 참수 등의 만행(蠻行) 동영상을 전 세계에 배포한다.

 

마음에 안 들면 이렇게 죽이니 잘 보고 우리한테 굽혀라...  

 

<음악계 관계 지도자들의 자성(自省)을 촉구한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인 순사가 동족에게 가장 악랄(惡辣)했다.

 

같은 음악인으로서 가장 사정을 잘 아는 처지인데도, 내 일이 아니라며 이를 방관(傍觀)하고 도리어 자신의 치부(致富)나 명예 유지에 활용하는 비도덕적, 반문명적 행태가, 검투장 안의 관중들같이 환호(歡呼)를 얻는 사회에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필자는 이 사회와, 문화융성에 대한 기대(企待)를 접은 지 이미 오래이나, 혹시나 음악계 한 분이라도 양심(良心)의 가책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까하는 연민(憐憫)에 몇 자 적어본다.

 

웰빙코리아뉴스 2014.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