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타 서울 SNS/음악지 칼럼

청출어람의 필요성

Conductor 2010. 9. 5. 09:38

현악기의 보잉은 소리 내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연주나 연습에 앞서 무엇을 위한 보잉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올바른 보잉은 악기에 따른 가장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낸다.
즉,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보잉의 각종 테크닉이 존재한다.
그 테크닉은 각자의 특성에 맞게 조정이 필요하기도 하고...

연구는 없이 선생의 가르침에만 의존하여, 자신의 특성이나 체형을 무시한 채 수십 년간 현악기 연습과 교육이 행해져 왔다.
최고 학위, 오랜 기간의 유학, 많은 공부 끝에 남은 것은 근육의 이상, 무리한 연습으로 인한 체형의 변화나 허리의 이상 등...
그 외의 정신적 부담감 등...

이러한 고행 끝에 연습이나 연주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수행 결과가 나타났다면 일단은 음악인생의 성공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연주자나 선생들이 이에 도달하지 못하고, 자신의 스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답습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보잉에 있어 아직도 정확한 박자에 따른 활의 분할을 가르치는 선생이 있다.
물론 초보의 경우에는 이도 해당이 되겠지만, 가르침이란 책임이 따르고, 전체적인 보잉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학생에게 가장 큰 밑거름이 된다.
그로 인해 학생은 보잉의 흐름에 대해 알게 되어, 연습의 목적이 뚜렷해지며 이에 따른 연습도 훨씬 수월해질 수 있다.

무대에서의 연주는 무대를 경험하지 못한 선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실전에서의 무수한 경험이 바로 선생의 자격이다.
보잉이든 손가락 테크닉이든 무대는 자신의 이론이나 상상 속의 세계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지식한 테크닉이나 무리한 연습을 강요하는 교습은 결국 학생을 멀리 돌아가게 만들며, 심한 경우에는 원 위치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학생은 그동안의 세월과 무수한 경비, 근육이나 몸의 이상 등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으며 정신적 박탈감은 무엇으로 대치할 수 있을까?
선생이란 책임이 따른다.
연주 무대란 서보지도 못한 선생이 자신도 모르는 잘못 내려오는 교습 방법을 답습하며 학생을 양산한다면, 잘못된 학습의 결과는 차치하고, 자신이 수십 년 공부한 연습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그렇게 인도했던 선생에 대한 학생의 실망은 어떻겠는가?

비브라토의 연습의 목표나 가장 중요한 점 등은 놓치고 엉뚱한 곳에 집착하며 학생으로 하여금 멀리 돌아가게 하는 등...
문제점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자신이 가르치는 테크닉이 맞는지 틀리는지조차도 모르는 선생이 수다하다.
자신의 선생이 그렇게 가르쳤으니 나도 그렇게 가르치는 것뿐입니다.

모든 일과 사물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하다못해 첼로의 테크닉 작은 것 하나에도 과학적인 분석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의 이해가 빠르며 연습이 수월해진다.
그리고 나서야 곡을 만들며, 최종적으로 무대에 서서 관객에게 감동을 주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이론과 소리를, 타인 보고 알아달라는 어불성설은 이제 그만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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