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메라타 서울 앙상블)
2007년 우리 음악계 총결산
탁계석 / 음악평론가, 21세기 문화광장 대표
극장의 공공성 회복 과제로 남겨
격량의 흐름 속에서도 2007년 한 해가 저문다. 특히 ‘大選의 해’라고 할 수 있는 올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가 예측 불가능의 혼미와 이전투구의 갈등이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 그러나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예술 본연의 작업에 묵묵히 그리고 치열한 작가 정신을 보여준 많은 음악인들의 땀 흘림에 힘입어 그 어느 해 보다 값지고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고 본다.
우선 제한된 지면에서 음악계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가능한 장르별, 이슈, 비전을 중심으로 객관화해 보려고 한다.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음악계 전체의 연주양의 증가는 가히 폭발적이다. 어느 곳 할 곳 없이 극장대관이 어렵고 특히 1,000석이 넘는 중대형 극장을 얻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특히 예술의전당이 내년 20주년 기념사업 준비로 개인 단체의 날짜 배정이 크게 줄었고 2,000석 이상의 오페라하우스, 세종문화회관 등은 뮤지컬의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진 결과로 보인다. 이로써 제기된 극장의 공공성 문제, 대관료, 과다한 고액 티켓에 대한 여론이 비등해 문화부가 내년을 공연 원가 공개를 통해 티켓 가격 정상화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정책 발표다. 필자 역시 10년 전부터 이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는데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견실해진 공공 예술단체의 작품성
정명훈의 서울시향은 내실화와 마케팅이 조화를 이뤄가며 관객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 가고 있는데 비해 KBS 교향악단은 체제 문제가 새 정부에서 가닥을 잡아야 할 것 같다. 열정에 비해 지원이 미흡한 부천시향은 임헌정의 브루크너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위기감이 감돌았던 코리안심포니는 박은성의 리더십에 맡겨졌다. 교향악축제에서는 마산시향의 백진현이 구원 투수로 각광 받으며 오랜 내부 갈등을 봉합했다. 강남심포니가 베토벤 교향곡 전곡 음반을 출시한 한 것은 대단한 의욕이라 할 수 있다.
오페라는 국, 시립의 존재감이 더욱 뚜렷해졌고 대구오페라하우스의 국제오페라 축제 의욕이 성숙감으로 나타나 높이 평가할만했다. 성남아트센터, 고양어울림극장, 의정부 등 수도권 극장들이 가세해 공연시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예술의전당의 악테옹 & 디도와 에네아스를 시작으로 한국오페라단의 리날도, 경남오페라단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초연등 바로크 오페라 열풍, 국립의 보체크 성남 아트센트의 낙소스섬의 아드리아네 등 초연 오페라는 영역확대란 점에서 신선하고 고무적이다. 단지 무대, 의상 등 국내 제작진들과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협력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면 한다.
외국 초청 공연은 사회의 명품 심리를 반영하듯 크게 늘어나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인데 이미 한 물간 성악가 쟈코 미니를 빈번하게 불러오다 결국 오페라 무대에서 펑크를 내고 말았다.
조수미의 전국 투어, 백건우의 베토벤소나타 전곡 연주 등 해외 스타들의 마케팅 기법도 날로 첨예화한 느낌이고 늘어난 전국의 공연장을 기반으로 김대진, 금난새, 김용배의 11시 콘서트의 확산은 전국의 공연장의 흐름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어 지역과 중앙의 격차를 줄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개인단체로는 화음쳄버, 페스티발앙상블이 메세나와 공공 기금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일취월장하고 있고 서울신포니에타, 서울챔버, 콰르텟 21, 까메라타 서울 첼로 앙상블 등이 열악한 조건에서도 실내악의 버팀목을 자임하고 있다. 실력을 앞세운 TIMF 등 젊은 의욕과 개인 독주자들의 자기 캐릭터 만들기도 변화 하는 공연 시장에 비전을 제시하는 작업이다.
이에 비해 민간오케스트라는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질적 하락이 눈에 드러나 보였다. 적절한 지원책이 마련되어 우수한 인력의 유실을 막아야 할 과제가 남았다.
합창은 노보 빌리치 등 해외 유명합창단들이 한 수 높은 합창 기량을 보여준데 비해 국내 합창은 그다지 괄목할 신장을 보여주진 못했다. 여전히 국, 시립합창단의 정체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대구창작합창 축제는 방향성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이 간다. 단지 뚜렷한 차별성이 없이 합창 콩쿠르가 늘고 있는 것은 자칫 예산 낭비가 되고 집중력을 상실케 할 우려가 있다. 경상남도가 세계합창올림픽을 유치한 것은 우리 위상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아닐까 싶다. 아카펠라, 창작 등 글로벌 수준을 위한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다.
창작계 질적 도약 일부 정화 노력 필요
창작계는 한국실내악축제가 시리즈로 이어져 일회성 창작의 한계를 벗어났고 진은숙, 이건용, 임준희, 강은수, 이귀숙, 김은혜, 한옥미 등의 새 조류가 시작되고 가곡에서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는 신선한 움직임과 이미 지난 것을 확대하려는 억지스러움이 시비를 불러오기도 했다. 가곡계 내부의 질적 淨化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가곡의 해석에서는 테너 이영화가 주목을 받았다.
윤이상 탄생 90주년 페스티발이 전국 규모의 공연으로 이루어지고 명예회복이 되었다. 이미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10년 전에 수여했던 특별상을 이수자 여사 방문에서전달 할 수 있었다. 이 협회의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로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을 한 이연화 피아니스트가 선정된 것은 예술가의 집념과 목표를 제시한 것이라고 본다.
황병덕, 오현명, 안형일, 김신환, 황영금님의 음악적 건재는 예술가의 자기 관리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귀감이 아닐까 싶다.
김형주 평론가의 평론집 전집 발간, 오동일 작곡가의 가곡 발표회, 윤기선 피아니스트의 손녀와의 가곡 녹음 등 목숨이 살아 있는 한 끝없는 정진을 하는 예술정신이야 말로 예술이 사회의 다른 영역과 다른 가치로 보인다.
꿈과 비전으로 새해 맞아야
동아국제음악콩쿠르가 부활하고 삶과 꿈이 새로운 오페라 대본가와 작곡가를 찾아 나서고 금호의 영재 육성과 청소년 피아니스트의 동아시아교류 확대 위한 장혜원 교수의 노력, 팔레스홀이 내일의 비전 음악가 발굴 등, 민간차원의 메세나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는 것도 우리를 기쁘게 한다.
모든 것이 상업논리로 치닫고 있는 것 같지만 예술의 순수성을 잃지 않으려는 더 많은 노력이 있어 우리에겐 희망이다. 새해에 본지는 ‘한국음악의 성장 동력을 키우자’라는 주제를 정하고 각 분야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면서 해법을 찾을 것이다.
새해에는 숙원인 음악박물관 건립 문제 등이 실제 청사진이 그려지고 많은 음악가들이 더욱 활기찬 활동으로 우리 음악계의 내적 성숙과 글로벌 시장 개척의 과제가 시원스럽게 함께 이뤄지기를 바라면서 2007년 음악계 결산을 맺는다. 모두의 건승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