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타 서울 SNS/음악지 칼럼

하우스콘서트 확산을 기대하며...

Conductor 2007. 10. 14. 15:10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음악잡지사 기자로부터 칼럼 요청이 들어왔다.
이 달은 무서운 속도로 음악 시장을 잠식하는 하우스콘서트가 주제라고 한다.
무얼 쓸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마감 날짜가 가까워지자, 근래에 필자가 겪은 문화 현장 두 곳의 느낌을 떠올렸다.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하지만 하우스콘서트의 근원을 거슬러 올리자면 찾아가는 음악회의 한 형태가 아닌가 하여 적어본다.
내가 겪은 두 행사는 정규 연주장을 떠나 일반인들 속으로 파고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첫 번째 예이다.
한국에서도 가장 문화의 중심지라면 서울이고 거기서도 문화의 혜택이 가장 풍요로운 곳은 어디라고 적시할 필요 없이 자타가 공인하는 곳이라 독자들은 다 알 것이다.
이 문화행사는 초대장부터 매우 화려했고 열려지는 주변 거리는 대리석으로 온통 치장되어 있고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곳이다.


사방에 첨단 유행 패션의 젊은 남녀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최고 수준의 백화점에서는 부티 나는 사모님들의 쇼핑이 하루 종일 이루어지는 곳이다.
행사 식전부터 최고급 수준으로 진행되더니 야외무대에서는 온갖 휘황찬란한 불빛과 네온사인 가운데 오케스트라의 오프닝 연주 후, 여느 행사와 마찬가지로 주최하는 내 노라 하는 인사들이 맨 앞쪽 좌석에서 관중들에게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그 후의 식후 행사 또한 화려하여 해 떨어진 가을 저녁의 쌀쌀함에도 불구하고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이번에는 두 번째 예이다.
이 행사 이틀 전 필자가 운영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체의 앙상블이 강원도 탄광촌 고한의 한 청소년문화센터의 초청을 받아 연주여행을 다녀왔다.
연주회 내내 시종 클래식 연주회에 집중하는 어린 학생들의 눈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고 무대에서 내려다본 어린이들의 관람 자세는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그렇게 반듯할 수가 없었다. 연주 후에도 열화와 같은 앵콜에 한 곡만 하려다 그들이 원하는 세 곡을 다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생들이 건네는 감사의 작은 꽃다발을 받아들며 우리는 도리어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곳과 주변의 병원, 초등학교 등은 필자가 몇 년 전부터 몇 번 방문해 연주한 적이 있으며, 올 때마다 어린 관객과 탄광촌 진폐증 환자, 산꼭대기 공부방의 가난한 청소년들이 도리어 우리들의 스승이 되어 각자 자기를 돌아보는 귀한 계기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요즘 많은 곳에서 하우스콘서트 붐이 일고 있다.
정규 무대가 아닌 가정집이나 소규모 강당, 갤러리, 강의실, 전원주택 등 다양한 곳이 연주 장소로 등장한다. 연주회가 열리는 곳의 마을 사람들이나 관계된 지인들이 주축이 되어 정기적으로 또는 부정기적으로 연주회를 진행한다.
연주자의 질도 매우 다양하다. 관객들은 연주자와 함께 호흡하며 가까이서 실제 연주의 감칠 맛 나는 감동도 맛본다.
중앙무대의 소수의 최고 연주자들이 주도하던 음악 현장이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장소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볼 수 있다. 넘쳐나는 고급 연주자들의 무대 기회 해소책도 되고 관객들에게는 저렴한 입장권으로 다양한 공연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도 중앙에 집중된다면 소외지역이나 중앙무대에서 떨어진 지방에서는 화려한 남의 집 잔치에 불과하다.
문화계의 부익부 빈익빈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가는 기존의 음악계 현장에서 뛰는 뜻있는 인사들이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닌 듯싶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전국의 문화 소외지역을 찾아 기존의 시설을 활용하고, 그 진행은 자발적인 자원봉사 연주자들이나 국가적인 지원을 통해 연중 내내 운영하여 활성화와 더불어 고착화 시키는 것이다. 찾아가는 음악회의 소요 예산은 지극히 적어 얼마든지 전국적으로 활성화해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강원도 고한의 경우에는 이 곳 신부의 열성적인 노력으로 중앙무대의 연주자들이 연중으로 찾는 명소로 거듭나 다른 지자체의 모델이 되고 있다고 한다.
가난한 어린 관객들이 꿈을 꾸며, 어릴 때부터 문화의 특별한 체험을 실현시키고 그 꿈을 바탕으로 올바른 사고와 감성을 갖게 된다면 이보다 더한 보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앞서 들은 첫 번째 예와 고한 탄광촌 아이들의 극명하게 엇갈리는 명암은 위정자들의 몫인가 예술인들의 몫인가?
화려하지만 별 의미는 없고, 치장은 요란하나 문화 소외지역과는 동떨어진 행사를 누구나 즐길 수 있게 더 발전적으로 개발해 나갈 수는 없을까?

탄광 마을 어린이 시집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중

“나도 하늘을 날고 싶다”

5학년 도미숙

조회 시간 때
어떤 하얀색의 새가
날고 있었다.
나는 그 새가 부럽고
나도 하늘을 날고 싶었다.
 

음악세계 2007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