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계 구조조정 발등의 불이다
음악계 구조조정 발등의 불이다.
대학 구조조정을 위한 프라임 사업이 윤곽(輪廓)을 드러냈다.
요점(要點)은 향후 10년간의 대학 졸업생 취업률을 계상(計上)하여 학과 정원을 조정하는 것인데,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열악한 문과대, 예체능 계열 대학 정원을 이과대 정원으로 통합 흡수한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조정된 학과 정원으로 입시(入試)를 치러야 한다며 이를 강행하려는 입장이다. 대학마다 프라임 사업 등으로 통폐합되는 학과가 적지 않아, 이들 학과가 전년도처럼 입시를 치르면 지원하는 학생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학의 생존 전략이 학령인구(學齡人口) 감소에 따른 구조조정에 있는, 현 교육계 개선책에서 후순위(後順位)인 예체능 계열의 불이익은 당연지사이다. 전국 4년제 대학의 예체능 계열 입학생은 2012년 4만1695명에서 2015년 3만9497명으로 5.2% 정도 줄었는데, 더욱 축소될 것이 불을 보듯 빤하다. 정부가 한류, K-팝, K-컬쳐 등 그동안 목청을 높이던 예술 분야의 문화융성(隆盛)이 말만의 전시성(展示性) 행정임이 드러난다.
이과 중심의 정원조정으로 발생될 문과대 지원 학생들의 불만을 줄이고자 문, 이과대 교차(交叉) 지원도 가능케 한다지만 이도 또한 현실성이 부족해 보이는데, 이조차도 예체능 계열과는 상관이 없다.
인적청산(人的淸算)이 목표인 구조조정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 그 누구도 이를 거부하거나 피해갈 방도는 없다. 쓰나미같이 몰려오는 각 분야의 구조조정에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도태(淘汰)되지 않을 대안(代案)을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이니, 예체능 계열, 특히 음악 분야의 서바이벌 생존 전략을 살펴보기로 한다.
압축성장(壓縮成長) 시대 경제발전의 주축(主軸)을 이루었던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은 대학에도 영향을 미쳐, 유니버시티, 멀티버시티를 양산했으며, 백화점 입점 방식의 나열로 예체능계 단과대학을 경쟁하듯 수하(手下)에 거느렸다. 경제 호황기에 번듯한 외형적 성장을 구가한 종합대학의 위상(位相)은 예체능계 단과대학의 교수 주가를 상한가로 끌어올렸고, 이에 따른 교수 중심의 클래식 문화의 틀이 형성되었다.
너도나도 유학의 길을 걸었고, 그 최종 목표는 대학 교수였으며, 일개 강사(講師)들은 교수가 신으로 보일 정도였다. 자연히 입시에 따른 비정상적 사교육 비리(非理)와 교수직, 강사직에 대한 거래가 공공연히 매스컴을 오르내렸으며 재단은 발전기금의 명목으로 각종 흑막(黑幕)을 양산했다. 그러나 경제가 하향곡선을 그리며 대학도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해 존폐(存廢)의 위기로 내몰리자, 음대 교수들의 따뜻했던 봄날도 가기 시작한다.
지방대학부터 시작해서 종합대학의 음대가 통째로 사라지고,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길고긴 새로운 이름의 학과와 통폐합되는 수난(受難)이 심해지며, 두 명의 교수가 한 교수실에서 동거(同居)하고, 장인교육의 일대일 레슨이 변해 한 교수가 같은 시간에 여러 학생을 가르쳐야 하는 진풍경(珍風景)이 벌어진 지는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경제호황기 장밋빛 환상을 안고 유학길에 올랐던 수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마치고 줄줄이 귀국(歸國)하며 가뜩이나 좁아진 대학의 문은 바늘구멍으로 화한다. 날아오는 독주회 초청장의 스펙은 세계적인데 현직(現職)은 비어있는 것이 작금의 음악계 현실이다. 또한 현장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도 주저리주저리 붙여 놓은 현직에, 이름도 생소한 여러 단체가 등장함은, 바로 부실한 음악계 현상을 대변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내실은 없이 간판(看板)만 화려하다.
좋은 시절 대학 교수가 된 선배들은 어떻게든 자리보전(保全)을 위해 밤잠을 설치고, 기(旣) 지출된 막대한 교육비를 보충(補充)하기 위한 새내기들은 결사적인 행보로 구직(求職)에 올인하는데, 그나마 있던 음악계의 공공단체들은 인적청산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양대 교향악단 사태를 비롯 각 대학의 통폐합, 지방 음대의 몰락, 생존의 기로(岐路)에 선 음악단체들까지 모두 문화흉성(凶盛)을 맞고 있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이를 예상해 종합대학 내의 음대를 분리(分離)시켜 자립도(自立度)를 높이자는 음악교육계 혁신 방안을 주장해왔다. 유감스럽게도 결국 이 예상은 맞아떨어져 종합대학 내 음대는 타 단과대학의 평점을 까먹는 골칫거리로 화했으며, 작금의 현실같이 타 단과대학 주도(主導)의 정원조정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는다.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依存)하며 정부의 지원금에 기대는 종합대학들은, 매년 적자(赤子)를 내는 음대를 어떻게든 떼어내려 하고, 마땅한 명분이 없던 차에 정부의 프라임 사업이 좌초(坐礁) 위기의 종합대학으로서는 희소식으로 다가온 것이 분명하다.
음대 고사(枯死)작전에 돌입한 정부와 대학본부 사이에서 살 길은 무엇일까?
더 자세히 살피자면 클래식은 고사시키고, 실용음악 등 돈이 되는 대중음악 위주의 학과 개편인데, 그동안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던 클래식 분야의 짐을 덜게 되니 구조조정의 명분이 서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이를 대변해야 할 한국음악협회는 노회(老獪)한 지도부로 인해 무기력(無氣力)하게 표류(漂流)하고 있으며, 음악인들은 어깨가 천근만근 무거워 제 목소리도 내지 못한다. 문화란 국민들의 호응 속에서만 제 자리에 설 수 있는데, 정부와 국민들 자체가 발등에 불이 떨어져 불황으로 허덕이니, 그 가운데서도 소수인 음악계는 안중(眼中)에도 없다.
그동안 필자가 주장하던 음대의 자구책(自求策)은 이러하다.
종합대학은 음대를 분리하여 콘서바토리 형태로 운영하여 재정 자립도를 높인다. 음대의 가장 큰 지출이 인건비(人件費)이므로 교수직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실기(實技)강사제를 시행한다. 이론과 행정 교수만 남기고 실기는 모두 강사제로 운영하면 인건비가 대폭 줄게 되며, 교육부의 강제적인 교수 충원(充員) 의무에서도 해방되어, 강사보다 못한 허울뿐인 비정년트랙 교수제의 편법(便法)도 사라진다. 또한 실기강사 채용(採用)은 학생들의 선택권에 있으므로 실력 없는 강사는 자동 퇴출(退出)로 운영자의 짐이 덜어지며, 우리 음악계의 고질(痼疾)병인 자폐증(自閉症) 현상도 사라져 원활한 순환(循環)이 이루어진다.
유럽의 오랜 전통의 모 콘서바토리는 교수든 학생이든, 당일 일찍 온 순서대로 필요한 시간만큼 연습실을 배정(配定)해 아침이면 줄을 선다. 이로써 교수실이나 레슨실을 합리적으로 운영하는데, 학생 연습실은 부족한데 얼마 쓰지도 않는 교수실이 텅 비어있는 현 음대의 개선책(改善策)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산학협동으로 레슨실, 합주실 등은 연주단체의 빈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어, 재정이 어려운 각 단체들끼리 공유하여 비용을 반감(半減)시킬 수도 있다. 고로 하드웨어인 건물의 유지비용도 최소화되어, 저비용 고효율의 음대 교육 시스템이 완성된다.
음악계의 퇴조(退潮)를 마냥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이루어지는 구조조정이란 결국 실력 위주의 재편(再編)을 요하는데, 이로써 관례로 행해지던 학력, 경력 위주의 음악계는 실력만 남는 순기능(順機能)의 효과도 있다.
또한 음악적 재능은 타고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재력이나 권세를 힘입던 부작용도 최소화될 수 있으며, 현장과 대학이 쌍끌이의 역할을 해야 함에도 이제까지의 한편으로 쏠린 편협(偏狹)하고 왜곡(歪曲)되었던 비정상적 궤도(軌道)도 수정이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성실하게 자신의 분야에 전력 매진(邁進)하면, 반드시 그 결실을 이룰 수 있는 환경도 조성(造成)된다.
예술의 상업화 현상은 교향악단, 합창단이 행사 전용(專用)으로 운영되며, 특정세력의 권력 전유물(專有物)로 화하거나 비전문가들에 의해 고유의 특성이 무시되기도 한다. 이로써 상업논리에 의해 인적청산의 대상으로 전락(轉落)하고, 대학도 또한 교육부와 거대한 이과와 문과대의 교수들 입김에 재단(裁斷)되는 한, 음악계의 자립은 묘연(杳然)하다. 통상 이런 경우 문외한(門外漢)들의 거쳐 가는 자리로 면피성(免避性) 인사들이 음악계 요직(要職)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문화흉성시대에 불가능해 보이지만, 기존의 음대 시스템을 미련 없이 청산(淸算)하여 배는 고플지언정 자신의 예술혼을 살리고, 수입은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나누며, 머리에 돈 계산만 난무(亂舞)하는 무지한 자들의 수하를 떠나, 예술가다운 행보(行步)와 자부심을 유지(維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러려면 음악인 각자가 오직 실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어쨌든 음악계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강한 자만 살아남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시대가 왔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막중(莫重)함은 교육계 지도자, 교수들의 안일(安逸)함으로 인해, 세월호같이 난파(難破)하여 십년지대계(十年之大計)에도 미치지 못하니, 국민들은 오지 않는 구조선(救助船)만 기다리며 갈팡질팡한다.
월간 음악평론지 "REVIEW" 6월호 Criti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