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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계와 지휘자의 문제 3

Conductor 2016. 3. 22. 12:30

이번 칼럼에는 지휘자의 유연(柔軟)하지 않은 몸이 연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본다.

 

KBS교향악단이 지휘자로 인해 파행(跛行) 사태를 맞던 중, 한 음대 교수인 비올라 주자가 객원 수석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의 전언(傳言)을 소개한다.

지휘자가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지휘하며 지휘단 위에서 펄쩍 뛰는데, 그가 공중부양할 때마다 박자가 달라집니다. 단원들끼리 얼마나 웃었던지요.”

불필요한 오버액션으로 인해 부양(浮揚)할 때와 착륙할 때의 시차(時差) 계산 오류가 연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주 나쁜 예이다.

 

그는 최근 자신이 창단한 오케스트라로 국립합창단과 함께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연주했다. 이 곡은 곡의 장중함과 무게감에 따른 지휘 비트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더구나 합창단의 소리는 언제나 오케스트라보다 늦다. 이 간극(間隙)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무대에서 박자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일단 몸의 유연함이 없어 지휘 비트에 일관성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이 곡의 백미인 8눈물의 날은 오케스트라의 전주(前奏)에 이어 장중한 합창이 따라 나온다. 지휘자는 이 부분에서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박자가 어긋남에 특별히 유의해야 하나 그는 실패하고 만다. 그 이유는 합창단이 나오기 전부터, 박자의 늦어짐을 경계했어야 하는데 예비(豫備) 사인이 없다.

 

지휘를 단 마디로 정의(定義)하면 예비 사인이다.

 

베를린필의 푸르트벵글러는 일명 지휘의 선지자(先知者)로 통했다. 더구나 이런 종교음악이라면 더욱 그렇다. 선지자란 말 그대로 먼저 알고, 후배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자이다.

 

결국 눈물의 날은 관과 현이 합창단의 늦어지는 박자에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런 박자는 관악기 연주자들에게는 매우 힘겨운 호흡을 요구한다. 그는 현과 관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지휘자란 오케스트라의 대표적인 관현악기쯤은 다룰 줄 알아야 그 특성을 알아 지휘를 할 수 있다.

 

지휘 비트에 있어 느린 박자의 음악이라도 탄력적(彈力的)인 바톤 테크닉을 구사해야 관현악기는 물론 합창단과의 연주에서 박자의 흔들림이나 느려짐이 없어진다.

 

필자가 소싯적 잠깐 동안 KBS교향악단에 있었던 시절의 일이다.

 

당시 국립교향악단이 해체(解體)되고 카라얀 콩쿠르에 입상한 지휘자가 KBS교향악단 전임 지휘자로 있었는데, 당시 KBS교향악단은 쟁쟁한 유학파의 국내 최고 기량의 연주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는 단원들의 눈과 귀에 차지 않는 지휘로 매번 마찰이 발생했고, 박자는 물론 청음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번은 리허설 중 관악기의 수석 주자가 일부러 틀린 연주를 해 그 반응을 보기로 했다. 현악기 주자들은 박자를 틀리게 연주했으나 모두 그대로 통과되었다.

 

몇 곡만 죽도록 파서 입상한 콩쿠르 출신 지휘자의 맹점이다.

 

지휘자에 있어서 귀는 생명과 같다. 포디엄 위에서 춤을 추며 자신의 멋진 모습을 관중들에게 포장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휘자의 모든 움직임은 좋은 음악에 있어 필연(必然)과 직결되어야 한다. 동작에 있어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지휘자의 가장 큰 덕목이다.

 

금번 베를린필의 차기(次期) 지휘자 물망에,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의 기적으로 알려진 LA필의 구스타보 두다멜이 거론(擧論)되었다. 그러나 단원들은 러시아 옴스크 출신의 키릴 페트렌코를 선택한다.

 

두다멜의 지휘 스타일의 특징은 동작이 크다는 점이다.

 

필자는 그 이유를 엘 시스테마의 수백 명에 달하는 청소년 교향악단에서 찾는다. 그만큼 큰 동작이 필요하며 예비 사인도 커야만 멀리서도 볼 수 있다. 자연히 큰 지휘 동작에 의한 단점이 발생하는데 바로 박자의 흔들림이다. KBS교향악단을 거친 두 지휘자의 단점이기도 하며 불필요한 큰 동작이 음악에 악영향을 끼친 경우이다.

 

세계적인 지휘자들의 경우 큰 동작이 오케스트라의 전체적인 박자에 방해를 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몸이 풀려 있어 유연하여 능동적(能動的)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지휘자 1세대는 몸은 굳은 상태에서 양 팔만 움직였다. 고로 협연자가 설 경우 거의 맞지 않았다. 협연지휘란 협연자의 몸동작과 일치되어야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된다. 협연의 경우 어떤 지휘자는 강박증에 몸이 더 굳는 경우도 있다. 관악기 출신 지휘자는 현란한 바이올린의 빠른 페시지들이 귀에 안 들린다는 고백도 한다. 또한 첼로의 저음도 듣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 1세대 대표적인 지휘자 한 분이 첼로 협주곡 몇 곡을 연달아 지휘한 적이 있다. 국제적인 명성의 첼리스트들이 곤란해 했고, 연주의 결과도 솔리스트와 교향악단이 엇나간 결과를 초래(招來)했다. 지휘자가 협연지휘에 임할 때에는 더욱 고도의 청력이 요구됨과 동시에, 두 팔은 물론 온몸이 유연해 솔리스트와 혼연일치가 되어, 어떤 음악도 소화(消化)해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좋은 지휘자를 판별(判別)하는 방법을 알려드린다.

 

솔리스트와의 협연에 있어 이를 잘 소화해내는 지휘자가 좋은 지휘자이다. 음악은 앙상블과 조화인데, 혼자 하는 독주는 잘하나 귀가 나빠 합주를 못한다면 이도 낙제이며, 더구나 오케스트라는 조화로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것이 최대의 의무(義務)이다.

 

- 다음 편에 계속 -


2016.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