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타 서울 SNS/음악지 칼럼

서울시향 정명훈 지휘자 누가 떠나게 한 것인가?

Conductor 2016. 3. 7. 19:01

정명훈 지휘자 사퇴, 그의 광팬들과 클래식 애호가들은 사태의 본질 직시해야!

 

서울시향 정명훈 지휘자가 올해의 모든 스케줄을 일방적으로 취소(取消)하고 프랑스로 떠났다.


언론은 둘로 나뉘어 비난과 동정의 기사를 쏟아내고, 음악계는 벌집 쑤셔놓은 듯 뒤숭숭한데, 그 음악계 사건에서 정작 음악인은 보이지 않고 자칭(自稱) 음악 전문가들의 사설(社說)과 논설(論說) 기사만 빼곡하다.

음악계를 대변(代辯)할 한국음악협회는 수십 년 묵힌 장맛으로 장독대 위에서 진중(鎭重)함으로 일관하고 있고, 음악평론가라는 인사들은 거대 언론들의 담합(談合)으로 지면(紙面)을 잃고 입을 다문 지 오래이다.


세상만사 있어야 할 일이면 있게 되고, 거쳐야 할 과정이면 반드시 거쳐야 하니, 이 또한 사회의 발전에 필연적(必然的)으로 따르는 과정의 하나로 이해한다.

 

정명훈 지휘자 사퇴 문제를 두고 일부 언론과 칼럼니스트들에 의해 사태의 진실이 경도(傾倒)되는 듯한데 가장 중요한 팩트는 이것이다.


외부의 언론이든 음악계든 어느 누가 정명훈 지휘자를 떠나게 한 것이 아니라, 비전문가의 기업식 운영이 그 기초이며, 서울시 자체 내의 비리(非理)와 문제들이 불거져 나왔고, 그로 인해 그가 사퇴하게 된 것이니, 이른바 그의 광팬들과 클래식 애호가들은 사태의 본질을 직시(直視)하기 바란다.


음악계의 원로(元老)들과 평론가들이 충고를 했던 적이 있으나, 바로 이른바 광팬들과 일부 언론에 의해 마녀사냥을 당한 터라, 이후부터 음악계는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으니 이제 와서 이를 음악계 문제로 경도시키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애초부터 서울시와 서울시향, 일부 언론은 음악계나 음악계 인사들은 아예 무시(無視)했으며 소귀에 경 읽기였다.


어떤 사설은 음악계가 정명훈 지휘자의 뒤를 이을 재목을 키우지 않았다는 책망도 곁들이는데, 그 신문 포함 온 언론과 정치인들이 십여 년 간 정명훈 띄우기에 열중한 일은 잊은 듯하다.


음악계가 뒤를 이을 재목을 키울 방법이나 재량권(裁量權)이 있었는가를 자문(自問)해 보기 바란다.


정명훈의 서울시향은 동네 상권까지 진출한 악덕 재벌의 상술(商術)을 본받아, 서울시 전역을 싹쓸이하며 중소 연주단체의 고사(枯死)작전에 열중했다.


가뜩이나 티켓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어려운 재정(財政)의 중소 연주단체들이 수없이 무너졌으며, 이를 무한경쟁시대의 승자독식(勝者獨食)으로 우월(優越)하게 쳐다보던 서울시향 아니던가?


재정이 열악하고 힘없는 음악계의 연주단체들은 문을 닫으면서도,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던 사정을 지금 비탄(悲嘆)에 잠긴 옹호론자들이 거들떠나 보았는가?


천민자본주의 사회의 풍조를 따라 음악계의 부익부 빈익빈을 실행한 뒤,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자 자신들끼리 싸우다 자멸(自滅)한 상태인데, 이제 와서 음악계의 문제로 비화(飛火)시킴은 온당치 않다.


필자는 정명훈 지휘자 사퇴 이후 일부 언론에서 배포한 유럽의 몇몇 저명 교향악단의 진출(進出)설을 읽고 매우 기뻐했다.


정명훈은 세계적으로 활동해야 하는 지휘자이다. 한국에서는 차세대 유능한 젊은 지휘자들을 육성(育成)해야 한다. 큰 나무 밑에서 작은 나무들은 고사(枯死)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국고와 경제난에 허덕이는 국민들한테 우리의 고급 한류 문화를 수출하여 외화(外貨)를 벌어들여야 하는 것이 세계적 지휘자가 할 일 아닌가?


동네 교회까지 싹쓸이할 무대에는 뒤를 이을 차세대 지휘자를 세워야 했으며, 자신은 국제적인 활동에 주력(注力)해야 했다.


이번 경찰의 부인 입건(立件) 사태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음악계가 차세대 지휘자를 키워 추천하면 정명훈의 부인이 가만있었을 것인가? 그의 형과 그의 부인의 법적 문제는 외부 인사는 범접(犯接)도 못하는 그들만의 리그의 소산(所産)이다.


정명훈 지휘자는 뒤에 숨어 그의 형과 부인, 비서, 시향 단원들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거물(巨物) 공인답게 모든 책임의 원천임을 자인(自認)한 후, 사과와 함께 향후 경찰 조사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뒤 외국으로 떠남이 합당했다.


혹자(或者)는 서울시향의 발전에 대해 매우 흥분한 상태를 이어간다. 음악계 교향악단 인사들 사이에서 회자(膾炙)되는 내용을 몇 가지 옮긴다.


연주계의 기량(技倆) 향상은 전반적인 국내 교향악단 전체에 해당하며, 서울과 거리가 먼 지방 교향악단들도 그동안 매우 발전된 것이 현 실태(實態)이다.


서울시향만 발전했다면 그 주장이 옳지만 전반적인 연주 기량의 향상은 간과하고, 서울시향의 발전만 보려는 편협(偏狹)하고 무지한 시선부터 고쳐야 할 것이다.


또한 국공립 교향악단의 문이 좁아 무대가 없어 쉬고 있는, 갓 입국한 훌륭한 젊은 연주가들이 음악계에 즐비하다. 이들의 기량은 기존의 교향악단원들 수준보다 더 높을 수 있다.  


현재 매년 쏟아져 들어오는 연주가들의 기량은 국제적(國際的)이다. 만일 국가든 기업이든 적은 비용으로 최고의 악단을 만들라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상황이다.


바로 전 KBS의 신년음악회에 출연한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모 오케스트라는 기존의 내로라하는 교향악단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매우 신선(新鮮)함을 선사했다.


음악계 내부의 문제에 정치권과 비전문가들이 월권행위에 해당하는 권한을 행사(行使)하다가, 국내 양 교향악단이 붕괴(崩壞)될 지경에 이름은 음악계의 큰 수치이다.


자연적인 물갈이와 순리(順理)를 따르던 타 교향악단의 눈부신 발전은 보이지 않는가? 그리고서도 여전히 음악계의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어 보인다.


이를 성경에서는 이렇게 지적(指摘)한다.


이 백성이 잔잔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는지라 그러므로 주께서 흉용하고 창일한 강물로 저희를 덮으시리니...”

 

웰빙코리아뉴스 2016.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