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타 서울 SNS/음악지 칼럼

단식(斷食)과 폭식(暴食)문화

Conductor 2014. 9. 10. 13:23

로마제국이 멸망한 세 가지 이유로 첫째가 탐식(貪食), 둘째가 술 취함과 방탕(放蕩), 셋째가 성적 타락(墮落)을 꼽는다.

먹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原初的) 욕구이자 생명을 지탱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인류의 삶의 질이 높아져 기본적인 삶의 영위 조건이 충족(充足)되면, 곧 이어 나타나는 부정적 현상인데, 역사는 이 부정적 현상이 두드러지면 파멸과 더불어 새로운 세대의 도래(渡來)를 경고(警告)한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인 식욕(食慾) 해결 후에는, 인간만이 가진 정신적 고차원적인 표현(表現)의 욕구가 따르는데 이를 문화라 칭한다.

이 문화는 사회의 정신계를 주도하며, 식욕을 기저(基底)에 둔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의 사회활동에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진보적(進步的) 방향을 제시하여, 인간 사회의 균형을 깨는 무지를 경고한다.

즉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는 사고(思考)를 갖게 하는 것이다.

정치나, 경제의 세계적인 대부호들이 문화에 많은 기여(寄與)와 지원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광화문 앞에서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눈앞에서 금쪽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단식 현장에 폭식(暴食)투쟁을 하는 무리들이 등장했다.

그동안 인터넷의 허상(虛像) 속에만 머물던 소위 일베라는 무리들이 사회 전면으로 등장한 것이다.

 

폭식’(Gluttony),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큰 죄 가운데 첫 번째 죄.

 

연쇄살인을 통해 인간의 심연을 파헤치는 영화 <세븐>(1995, 데이빗 핀처 감독)의 첫 번째 살인 현장 장면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짓게 되는 여러 죄들 가운데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폭식, 정욕, 이 일곱을 콕 집어 죽어 마땅한 큰 죄라고 한다.

 

먹는다는 것은 사람이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행위인데, 그것이 죄가 되는 상황은 도대체 어째서일까? 대부분의 생명체는 모두 먹는다. 식물은 물과 땅 속 영양분을, 동물은 자신이 소화시킬 수 있는 푸성귀나 다른 동물을. 그러니 인간이 먹고 마시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폭식은 죄다. 꼭 성서에 따른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과시(誇示)하기 위해 먹는 것은 생명의 낭비이며 착취다.

-이안의 컬처필터 중-

 

특정 목적의 어떠한 현상이 사회에 발로(發露)되면, 반드시 그 시대의 자화상을 볼 수 있으며, 전체 사회의 실상을 유추(類推)해낼 수 있다.

음악을 하는 입장이니 음악계의 현장으로 눈을 돌려본다.

 

요즘 부상(浮上)하는 뉴스로 KBS교향악단의 해묵은 갈등이 한계에 차, 바야흐로 문화계 최대, 초유의 소송전이 벌어질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몇 해에 걸친 낙하산 지휘자와 사측의 연습실 채증(採證) 촬영 등, 인격 모독적인 반예술적 행태에 분노하던 단원들이 법인파견 계약만료와 함께 복귀(復歸)를 선언하자, 사측이 3주의 연수원 합숙 후 일반직 전출(轉出) 명령을 강행한다.

음악계 일원으로서 매우 개탄(慨歎)스러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양대 교향악단의 한 축인 모 교향악단은 한 축이 비틀거리는 사이, 지휘자와 함께 해외 연주 성공의 축배를 들며 치적(治績) 자랑의 자화자찬에 매몰(埋沒)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국제적 음악 관례(慣例)를 어느 정도 아는 음악가는 물밑으로 오가는 조건만남의 실상(實狀)을 잘 안다.

평온한 사회에서 저마다 문화의 꽃을 피우는 것이야 무슨 문제가 있으랴마는, 사회가 선장(船長)이 사라진 혼돈(混沌) 속에서, 자식 잃은 부모들의 기한 없는 단식, 가족을 떠나 수용소(收容所)로 끌려가는 예술가들이 국민들의 탄식을 자아내는 판인데, 한편에서는 폭식과 축배를 드는 것이 현 한국의 문화계 현실이다.

 

문화의 본질은 휴머니즘이다.

그 문화가 정치나 경제의 통제 하에서 휴머니즘과 자율(自律)을 잃어버리면, 바로 광화문 폭식, 축배의 현장으로 화한다,

문화가 개인의 치부(致富)나 명예욕,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추락(墜落)하면, 한낱 어릿광대의 춤에 불과하다.

 

예술로 참칭(僭稱)하던, 동족을 가스실로 보내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오케스트라 음악도 매우 활기차고 평온하고 훌륭한 연주였다.

물론 연주 기술도 최고였고...

탐식을 바탕으로 한 예술가와 정치, 경제는 순진(純眞)한 음악가들을 꿰뚫어보고 있다.

그리고 그 폐해(弊害)는 세월호와 같이 예술, 정치, 경제 공멸(共滅)로 나타나고, 후세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친다.

다시 이안의 컬처필터를 인용(引用)한다.

 

그들은 죽음의 상징, 네크로필리아들의 단식 투쟁에 맞서는! 생명의 상징, 바이오필리아들의 삶의 향연, 폭식 투쟁이라고 꽤나 어려운 말 써가며 아는 척을 했다. 그러더니 일베에서 세를 모아 경호팀까지 조직해가며 광화문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단식 장소에 몰려들어 치킨에 피자에 술까지 먹고 마시며 패악을 부렸다.

 

알려면 제대로 알았어야지. ‘바이오필리아라는 말을 처음 쓴 에드워드 윌슨은 생명 사랑이란 본능적으로 다른 생명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특별한 방법이라고 했다. 인간은 지구를, 미래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우리 안의 생명사랑 본능을 깨워야하며, 생명사랑 본능이야말로 다양성을 지킬 힘과 새로운 윤리의 강력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그런데 생명을 먹어 치워 낭비하는 폭식이 바이오필리아라니!

 

절제(節制)와 균형, 중용(中庸)을 잃은 사회이다.

 

뮤직투데이 2014.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