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ductor 2013. 3. 10. 18:41

싸이의 파리 공연에 2만여 관중이 몰려 플래시몹을 즐겼습니다.

플래시몹은 무목적성, 익명성, 등이 선행됩니다.

인류 역사 내내 이어져온 식상할 대로 식상한 계몽주의나 공통선의 독선주의에 대한 일종의 반발이자 획일주의의 탈피현상이겠지요.

 

구미의 음악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소수 전공 위주의 음악교육이, 다수 위주의 사회음악의 형태를 띠며 클래식 사양화로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 공백을 아시아인들이 뒤늦게 뛰어들었구요.

 

연중 내내 열리는 각종 음악회와 해설 등은 관객의 확산에 이바지했으나 이에 대한 피로감도 차차 누적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방적인 주입식, 나열식 연주와 떠먹이기 식 해설은, 수동적 감상에 머물러 각 개인 감성의 발전을 저해하며 객석의 폐쇄성을 더욱 부추겼고, 오직 스타에 의존하는 구태는, 어디든 그 밥의 그 나물로 예술의 다양함을 고사시켜 음악계 공멸로 향합니다.

 

나의 스튜디오가 있는 예술의전당 앞 사거리의 풍경이 매년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오랜 연주가 생활로 인해, 악기 든 모양으로도 전공자와 아마추어를 구분하는데요.

아마추어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회는 이렇게 변화해 나가는데 클래식계는 변화에 대처를 못하니 여전히 구태의연합니다.

관중은 이미 수동적 감상이 일시적인 환각에 불과하며, 자생의 구동력 상실로 도리어 그들만의 리그에 세뇌 당한다는 자각을 하는데요.

즉 자신한테 없는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겁니다.

 

그 산물이 바로 범람하는 재능기부의 역현상입니다.

이마저도 보여주기의 나열식에 멎어있구요.

어쨌든 이제부터는 일방통행의 예술행위는 대중에게 와닿지 않습니다.

자폐적 기질의 예술은 그만하고, 경제적 손익 계산이 안 되는 분야이니, 차라리 원점으로 돌아가 순수함에 취하면 예술을 택한 명분과 대중과의 소통이라도 남습니다.

 

싸이의 세계적 한류는 목적성과 의도된 기획에 질린 현대인들에게, 인종과 지역을 넘어선 해방구를 선사하여, 유튜브 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최대 조회 수를 기록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플래시몹에 참여한 것이지요.

일방통행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나갔습니다.

교육계, 종교계 다 마찬가지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