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임병걸 부장님의 연주회 후기
KBS 임병걸 부장님이 쓰신 2012년 6월 28일 가곡마을 초청 카메라타 서울 첼로 앙상블 연주회 후기입니다.
<가곡마을 제공>
음악연주를 들을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도랑물처럼 흘러가는 피아노 선율에 젖을 때, 파도처럼 절규하는 바이올린 선율에
심장 철렁할 때, 가슴 밑바닥을 저인망으로 훑어오는 첼로의 묵직한 선율을
들을 때, 밤 하늘의 별똥별인 듯 가슴에 불똥으로 떨어지는 트럼펫 선율을 들을 때
나는 가끔 혼란에 빠지곤 합니다.
도대체 이 소리는 지금 누가 연주하는 것일까?
물론 건반 앞에 앉은 피아니스트, 활을 켜는 바이올리니스트와 첼리스트,
두 볼이 터져라 힘을 불어넣은 트럼페티스트가 연주하는 것일테지요.
하지만 눈을 들어 연주자와 한 몸인 것처럼 호흡을 맞춰 흔들리고 떨고 울리는
악기를 볼 때마다 좀 헷갈립니다.
연주자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악기가 연주자의 손과 기술을 빌어
스스로 연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생물학자 리차드 도킨스는 그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흔히 사람은 유전자를
이용해 자손을 퍼뜨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유전자가 사람이라는 숙주를 통해
자신의 생존을 이어가는 것이라는 주장합니다.
황당한 발상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일리가 아주 없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겉보기에는 연주자가 악기를 연주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악기가 자신의 연주를 위해 연주자의 피나는 노력과 뛰어난 영감을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요?
20세기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의 한 사람인 미국의 예후디 메뉴인은
그의 자전적 에세이 "끝나지 않는 여행"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위대한 바이올린은 살아 있다.
바이올린의 모양은 제작자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나무는 소유자들의 역사나 영혼을 간직하고 있다.
나는 연주할 때마다 내 자신이 자유로운 영혼 또는 속박당하는 영혼임을
느끼게 된다. "
그러니까 이 위대한 연주자조차 연주할 때마다 자신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고 ,바이올린에 자신의 영혼이 속박 당하는 느낌이라고 하니, 사실은
수백년을 연주해 온 바이올린이 연주의 주체인 셈이라는 얘기 아닐까요?
그 바이올린을 만든 이태리 장인의 혼이 담겨 있고, 그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무수한 연주자들의 땀과 눈물과 기쁨이 배어있고, 그 연주에 열광했던 수천, 수만
관객의 박수와 환희와 감동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바로 그런 악기가 대를 이어 스스로 연주를 이어간다고 볼 수는 없을까요?
첼로의 철학자라고 불리우는 영국의 첼리스트 이셜리스도 이렇게 말합니다.
" 내가 어떤 첼로로 연주하고 있는지 상기하기도 전에
내 첼로가 그 곡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 러시아의 탁월한 바이올리니스트는 바이올린과 자신의 관계를 부부관계라고 고백합니다.
비록 악기가 연주자를 속박하는 관계는 아니더라도 연주자와 악기는 상호 수직적 종속관계가 아닌
대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라는 의미일까요?
어제 카메라타 서울 첼로 앙상블의 연주도 그랬습니다.
넉대의 첼로와 네 분의 첼리스트가 나란히 앉아 우리 귀에 익은 아름다운 곡들을 연주하는 내내
똑같은 의문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 아름다운 선율의 연주 주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네 분의 연주자는, 아니 넉대의 첼로는 합창으로도 잘 알려진 바그너의 순례자의 노래를 연주할 때는
때로 한 사람의 연주자인듯, 혹은 하나의 악기인양 일사불란한 연주를 하다가,
파헬벨의 캐논에서는 400미터 이어달리기를 하듯 악기에 악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장엄한 선율을 뽑아 냈습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 over the rainbow, 엘가의 사랑의 인사에서는 따로 또 같이 저마다 맡은
선율을 연주하면서 조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습니다.
때로 연인을 놓고 질투하는 연적처럼, 때로 둘도 없는 친구처럼, 때로 잘 짜여진 팀웍을
발휘하는 농구선수들처럼 첼로의 선율들은 그 때 그 때 퍼즐 조각처럼 변신했습니다.
이 무수한 선율의 조각들이 흩어지고 뭉치고 다시 흩어지는 마술에 취해,
한 시간 반에 걸쳐 스무곡에 가까운 첼로 넉대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선율에 취하면서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른 악기는 몰라도 첼로와 첼리스트는 대등한 입장에서 선율의 절반 씩을 책임지고 있는
부부관계가 틀림없다고,
실제로 피아노와 피아니스트는 크기에 있어 부부가 되기란 어렵습니다.
현악기 중에서도 바이올린은 바이올리니스트의 품에 쏙 안기는 작은 크기인가 하면,
콘트라베이스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큰 당신이지요.
첼로는 크기도 연인이 되기에 딱 맞고, 그래서 그런지 뿜어내는 음색도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흡사하다고 합니다.
바이올린같은 폭발적인 선율이 없어 다소 밋밋하다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갈수록 첼로의
음색이 좋아집니다.
조금 화나는 일이 있어도 참고, 조금 흥분할 일이 있어도 다독이고,
은근한 불에서 한 소끔 끓여낸 배추처럼, 벼랑과 폭포수를 거쳐 평평한 계곡을 흘러가는 물처럼,
폭풍이 휘몰아친 뒤 솔 숲을 스치는 순한 바람처럼 그런 선율이 좋아지는 것이지요.
열광적인 관객들의 호응에 무려 앵콜 연주를 세 곡이나 해 주신 네 분 연주자들의 넉넉한
마음도 역시 첼로를 닮았습니다.
부부는 닮는 것인가 봅니다.
첼로처럼 넉넉한 분들과 함께 해서 더욱 행복한 밤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첼로처럼 살아야겠습니다.
2년 전인가요,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를 듣다가 써 본 시 첼로로
어제 연주해 주신 네 분의 첼리스트와 넉 대의 첼로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여의도에서 goforest 合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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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바이올린 소리는 하늘에서 내려오고
더블베이스 소리는 땅에서 올라오지만
내 소리는 당신들과 마주쳐 나는 소리지요
바이올린은 당신들 품에 녹아들고
더블베이스는 어쩐지 낯선 타자
하지만 나는 당신들과 따로 또 같이 있는 벗
내 목소리 당신 닮은 이유도
나와 당신 팽팽한 마주침의 결과
당신이 나를 안으려면
내가 다가가는 만큼
당신도 내게 다가와야 하지요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나와 당신들의 자존심 사이에서
내 소리는 당신의 소리, 당신의 소리는 내 소리하여 죄많은 당신들
신 앞에 무릎 꿇고 속죄할 때도
내가 콜 니드라이 선율로 흐느껴야
신께서도 당신들의 눈물 받아주시고
당신들 방황할 때도
내가 카잘스의 선율로 당신들 위로해주어야
비로소 당신들은 고요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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