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타 서울 SNS/음악지 칼럼

젊은 뮤지션 12명, 비평가와 진로 개척에 나선다.

Conductor 2012. 2. 3. 19:45

젊은 뮤지션 12명, 비평가와 진로 개척에 나선다
2012년 01월 21일 (토) 15:40:23 [조회수 : 355] 홍현선 editor@ucnnews.com
과포화된 예술 인력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비평가들이 나섰다. 상당 수준에 이른 우리 예술력이 한계시장 안에서 원활한 소통을 찾지 못한다면 성장 동력을 잃을 것이란 위기감 때문이다. 경제위기에 가장 먼저 움츠려드는 것이 문화예술이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소극장 운동, 최근에 문을 연 ‘한국가곡예술마을 나음홀’에 평론가와 뮤지션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펼쳤다. (1월 11일 오전 11시~오후 2시)<편집부>

비평가 冒頭(모두) 발언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 음악가의 가는 길이 많이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한국가곡예술마을’과 같은 둥지가 우리 앞에 놓여 의욕적인 새 출발을 돕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때 일수록 ‘공간’이야말로 창조성에 영감을 주고 잘못된 습관, 왜곡된 생각의 거품을 빼고 진솔하게 예술에 접근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정말 오랫동안 갈고 닦은 능력을 死藏(사장)시키지 않고 나라와 개인의 예술발전의 성장 동력으로 키워나가기 위한 혁신적인 문화 운동을 펼치기 좋은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곳이 운동의 출발지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것은 이 둥지의 주인들이 이곳 장소를 옮겨오는 과정에서 수해를 당해 모든 것을 잃는 등 큰 고통을 받았기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가 지금 처한 현실 상황과 맥을 같이 할 수 있는 문제여서 ‘가치의 재발견’, ‘협력하고 융합’하면서 과거의 답습이 아닌 과거 것을 털어 내고 독창적인 해법을 제시하자는 것입니다. 위기 극복의 모범 답안을 만드는데 이 공간이 대안이 된다면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이 부럽지 않은 신문화의 권위를 가질 것이라 믿습니다.

누구라도 살면서 한번 쯤 겪을 수 있는 ‘절망의 순간’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는 우리의 위기 돌파력을 검증 받을 수 있는 기회이고 지혜의 공유로 더 많은 사람과의 네트워크 연대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뜻과 철학이 있는 공간, 새 문화를 창출해내는 자유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공유되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양적 팽창만 있었지 방향이 없는 것은 혼돈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量(양)에서 質(질)을 추구하면서 방향성을 찾는 일입니다.

1차적으로 한국가곡예술마을이 추천한 베스트 12명의 음악가와 함께 자리를 마련한 이유입니다. 다 모이지는 못했지만 오늘이 첫 예비 모임인 만큼 자유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자기 소개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과 젊은 예술가들. 표정이 심각하다.


최영철:(지휘자, 카메라타서울 예술감독): 우리 카메라타 서울은 이번에 27회째 정기연주를 마쳤습니다. 앙상블은 첼로를 주축으로 구성된 단체입니다. 일찍부터 인터넷 홈페이지를 기반으로 한 작업을 해오면서 상당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자평합니다. 개인적으로 지휘자로서도 활약하고 있는데 지난해 베를린필홀에서 있었던 3일간의 축제에서 이곳 브란덴부르크심포니를 지휘하며 글로벌시장에 우리 작품과 연주가가 나가야 할 것이란 점을 피부로 느끼고 왔습니다. 이후 독일의 첼리스트들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을 통해 세계 음악인들과 교류를 활발하게 해나가고 있는데 바야흐로 SNS 시대가 우리 예술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변모가 눈부십니다.

장은훈(한국가곡예술마을 대표): 나는 성악가로 우리 가곡을 발전시키고 시대에 맞는 새 옷을 입히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가곡이 불리지 않고 들려지지 않는 것을 외부 환경의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청소년 및 문화 환경이 역동적으로 바뀌고 있다면 가곡 역시 전통성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부르고 들을 수 있도록 창법과 작곡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얼과 정신이 사라지고 우리 정서에 어울리지도 않는 무국적의 문화가 청소년 정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가곡마을 순천 高山(고산)에 경치 좋은 곳에 있는 만큼 이 장소를 바탕으로해서 많은 성악가 작곡가들의 창작 공간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오늘이 참으로 뜻 깊은 자리가 아닐까 하는데 아직 여러모로 불편한 것들이 많지만 서로 힘을 합해 공간을 꾸며 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종례(나음홀 기획실장): 앞서 탁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대치동 가곡마을이 수해로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이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큰 공간에서 독주회를 하기전 예비 무대로 ‘미리 해 보는 음악회’로 시작했는데 음악가들의 반응이 좋고 이런 기능이 필요하다는 말들을 많이 해주어 힘이 납니다. 또 좋은 연주를 보여주는 분들께 이같이 비평가 선생님들께 다시 좀 연주가의 연주도 들어주시고 키워 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제안을 수락해 주셔서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제 출발점인 만큼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여러분들과 함께 한다면 공간도 살고 여러분들의 자생 기반에 어느 정도 보탬이 될 수 있으리란 믿음은 분명 있습니다.

제가 500개의 카페와 블로그에 음악가들의 홍보를 하면서 무척 힘들지만 연주가들이 이를 통해 날개를 달수 있다면 힘들다 생각하지 않고 하겠습니다. 오늘 정말 베스트 음악가와 함께 출발하는 것이어서 희망을 느낍니다.

탁계석: 모두들 좋은 이야기 많이 해주셨고요. 지금부터는 젊은 음악가들이 각자 생각하는 것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좋겠습니다. 먼저, 누가 먼저 얘기할까요?

   
▲ 최영철 카메레타서울 예술감독(왼쪽에서 네번째)과 장은훈 한국예술가곡마을 대표(가운데)



조소연
: 저는 피아노 치는 조소연이라고 합니다. 저는 예고가 아니라 인문계 학교를 나왔어요. 대학교에 가서도 대학교 때 여러 가지를 경험하지 않으면 배울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데모도 열심히 하고, 여러 경험도 많이 쌓았어요. 독일에 유학갔을 때 그곳 선생님들이 너는 한국 사람 같지 않다고 할 정도였어요. 지금은 후배들에게 많이 조언을 해주는 것이요. 대학 때 많이 경험해봐야 네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판단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기획을 좀 하게 된 것 같고요. 몇 년 전부터 그림과 함께 하는 음악회, 아동을 위한 공연 기획 등 다방면으로 관심을 갖고 있어요. 그림과 함께하는 음악회를 할 때는 그림에 해당하는 곡 해설을 스스로가 써요. 저의 얘기, 곡에 대해 무엇을 느꼈는지를 쓰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반응도 좋아요.

최영철: 여러 가지 좋은 경험을 많이 해보셨네요. 해외로 나가기에 적합한 요건을 많이 갖춘 것 같아요.

조여진: 저는 첼로하는 조여진입니다. 외국에 도착해서 두달 만에 입학 시험없이 학교에 들어갔어요. 그곳 선생님을 통해서 한국에서 잘못 배웠던 부분들, 활 잡는 것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외국 생활이다 보니 생전 겪지 않았던 가난을 겪으면서 먹고 사는 것이 힘들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아르바이트도 해보면서 생각이 많이 깨이게 된 것 같아요.

한국에 와서는 처음에는 고정 객원연주자로 나갔어요. 그런데 안정적인 것을 탈피해보고 싶어서 초등학교 시간제 음악교사를 가르치는 계기를 갖게 되었어요. 그 아이들에게 다른 경험을 해보게 해주고 싶어서 악기 자료실에 있는 여러 악기들을 제가 새로 공부해가면서 가르쳤어요.

그러다보니 3개월 가르쳤을 뿐인데도 아이들이 아직도 연락을 해요. 치우치지 말고 여러 가지를 해보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고요.

어머니가 재즈댄스를 하고 동생이 트럼펫을 하는데 접목해서 같이 공연도 하고, 상하이에 초청받아서 공연도 해보았어요. 지금은 현대곡에 관심이 많아 새로운 곡을 연주하고 싶고요. 연주할 기회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좋은 계기들과 연결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혜원: 저는 오보에하는 이혜원입니다. 저는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에요. 중앙대를 다녔는데 음대가 안성에 있어서 시골 분위기에 너무 박혀 있다가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그때 선생님이 강조하신 것이 길거리에서 스트립쇼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며, 레슨을 가면 같이 왈츠도 추게 하고 그러셨어요. 그러면서 제가 이제는 바뀌었구나 했는데 다시 한국에 돌아와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요.

오케스트라에 객원으로 나가고 하면서 왠지 분위기 자체가 튀는 행동을 하면 안 될 것 같고 분위기에 젖다 보니 음악적 창의력을 죽이는 것 같아 고민이 많았아요. 그러다가 ‘테이크아웃’이라는 창작오페라를 하나 준비하게 되었어요. 첫날은 아는 분만 오셨는데, 마지막 날은 거의 티켓이 다 팔릴 정도로 호응이 좋았어요. 그런데 주변에서는 이런 작품을 하는 것 자체를 B급, 마이너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안타까워요.

   

김범: 저는 클라리넷하는 김범이라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독일로 유학을 갔어요. 학교 마치고 미국 경찰교향악단으로 근무하다가, 군대 마치고 다시 뮌헨으로 유학을 갔고요. 다시 한국에 들어와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오디션이 없어서 지금은 객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런데 어떤 오케스트라를 가면 계속 같은 레퍼토리를 시켜요. 그렇게 자꾸 하다보면 성의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눈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처음에는 긴장하고 뭔가 해야겠다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즘 많이 생각하는 것이 긴장을 늦추지 말자, 내년까지 제 발전을 위해 좀더 노력하자 하는 겁니다.

이예림: 피아노하는 이예림입니다. 음악하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하는 역할이 학교에 있을 때와 다르게 학교에서 가르치며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의논해줘야 하는 입장이라는 겁니다. 지금 음악을 하는 아이들 모두가 음악가가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학생은 허덕이고 독주회는 자기 돈 들여서 하고, 현실과 이상의 갭을 줄여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 같아요.

학부형들이 피아노를 어디까지 시켜야 되요 라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 예전에는 가망없으니 그만 시키라는 말이 줄곧 정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까지는 전공 이상 가게 하는 것도 전체적인 발전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피아노 우리 사회 발전에 미친 영향을 연구해보고 싶어요.

안수경: 저는 소프라놉니다. 선화예중과 예고를 나오고 연세대 다니다 유학을 갔어요. 유학가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하면서 자부심에 벅찼죠. 나는 정통음악하고 정말 소통하는 음악가라고 하면서요. 유학생활하면서는 선교합창단하면서 음악적인 진심으로 소통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어디 가나 소통할 자신은 있는데, 어디 가서 할 거냐. 누가 널 불러주느냐 이런 고민이 있는 거죠. 최근에 페이스북도 시작하고 하면서 아, 내가 이런 것을 간과했구나 혼자 잘하면 뭘 해요. 사람들이 어디서 뭘하는지도 모르는데요. 그래서 이런 소통에 대해 더 관심 가지려 하고요. 서로 나누고 하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박승혜: 저는 피아노를 하고 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이 아니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는데요. 대학교 4학년 때 음악캠프 간 것이 계기가 되어 가게 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일을 해도 피아노 관련한 일을 했는데 유학 가서는 관계없는 일도 해보고, 그러면서 세상이 이런 거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어요.

박사 과정하면서 한국작곡가 연구를 했어요. 영적으로 와 닿는 연주를 하는 게 꿈이고요. 들을 때 감동이 되면서도 한국적인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김준희: 저는 예원학교 다닐 때부터 피아노를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제가 피아노 하는 사람 같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피아노라 악기는 상당히 보수적인데 그것을 어떻게 하면 사회와 연결시킬 것이지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 중에서 정말 정통연주를 한 사람이 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연주전공을 한 제가 행정을 공부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 고민을 많이 해요. 그러다보니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도 있기도 하고 그래요.

탁계석: 지금은 미꾸라지처럼 양동이에 모여 있으니 산소가 부족해요. 빨리 기회를 열어주어야 해요. 그런 네트워크 시대가 왔어요. 자꾸 나눠줌으로 기회가 확대가 되고 하는 거예요.

김유지: 저는 바이올린하는 김유지라고 합니다. 14살 때 제가 너무 바래서 6개월간 단식 투쟁 끝에 러시아로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밥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니 엄청 고생하고, 도둑도 맞고 늘 소매치기도 당하고 하며 생활했는데, 그래도 훌륭한 선생님들 만나 열심히 공부하다가 부모님들이 하도 걱정을 하셔서 오케스트라로 옮기게 되었어요. 27세에 과정을 마치고 들어왔고요. 다들 좋은 학교도 나오고 귀한 집 자제들로 프라이드가 있는데, 저는 부르면 무조건 가서 연주를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문화소외계층, 다문화가정 얘들 레슨도 하고요. 그런 기회를 통해 좋은 사람들도 알게 되고 그런 것 같아요.

장은훈: 이런 모임을 통해서 음악가들이 사회에 기여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이러한 모임의 목표라 할 수 있고요. 이런 모임을 통해서 사회에 음악이 기여할 수 있는 많은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탁계석: 다들 너무나 진솔한 이야기 들려주어 고맙고요. 오늘이 시작으로 큰 소통과 발전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요.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오늘 모임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