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ductor 2011. 12. 13. 09:29

구소련과 동유럽의 공산 체제 치하에서는 국가의 강제적 예체능 진흥 정책으로 소련은 예술 강국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물론 자신들의 체제의 우월성을 홍보하기 위한 방편이었지요...

고로 오케스트라든 발레든 체육이든 세계 최고의 기량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 부문 종사자들의 살벌한 인간성 말살이 자리하고 있었구요...

예술의 목표가 정치 이념에 의해 철저히 변질되고 차단되었습니다.

고로 틈만 나면 서구 세계로의 망명이 이어지지요...

 

역설적으로 뉴욕필이 노조가 결성되자 그 전의 음악만 못한 처지가 됩니다.

각국의 오케스트라에 노조가 설립되고, 음악의 질은 떨어집니다.

지휘자 독단으로 음악을 만들기가 어려워지지요...

훌륭한 음악을 만든다는 명분으로 오디션을 통해 단원들을 일렬로 세우기도 어렵습니다.

단원들의 인간성 훼손을 방어하는 각종 기구가 결성되지요.

자연히 음악은 퇴보를 가져오는 듯했습니다.

 

모든 사회가 민주적 변화를 가져오는데, 음악만이 남아서 옛 틀을 고집할 수 없지요...

지휘자나 정치 권력이 교향악단을 좌지우지하기가 점차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단원들의 책임이 커져가고 자율성이 회복되어가며, 차츰 정착되기 시작합니다.

교향악단 노조가 정착되어 감에 따라 정치나 외풍, 지휘자의 음악 외의 독단이 힘을 잃게 됩니다.

유럽의 교향악단들이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민주적 절차에 의해 상임 지휘자를 단원들의 투표로 선정하기 시작합니다.

교향악단의 주인은 국민이며 단원들이라는 민주사회의 기본을 실천합니다.

 

비엔나필은 아예 상임 지휘자를 두지 않습니다.

최고의 객원을 초빙하여 연주회를 열지요...

그 자부심도 대단합니다.

한 사람의 음악에만 의존해야 했던 상임 제도의 허점을 배제하고, 모든 음악을 골고루 접하며 선보일 수 있었지요...

단원들 사이의 앙상블이나 호흡이 좋아졌구요...

상임 지휘자에 의한 단원들의 강제적 퇴출이나 평가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모든 평가도 자체 내의 무한 책임 하에서 이루어집니다.

 

베를린필도 여러 객원 지휘자를 초빙하여 연주해 본 뒤 단원들의 평가에 의해 상임 지휘자를 선정합니다.

독일의 교향악단들은 단원들로 이루어진 악단 내부의 운영위원회가 막강 권력을 가지고, 지휘자든 신입 단원이든 자체 내의 전 단원 투표로 지극히 민주적 절차에 의해 운영됩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화나 교향악단 역사는 짧습니다.

정치도 지휘자도 연주자도 청중도 아직 민주적인 자율성을 회복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유독 교향악단 체제가 발전하지 못하고 과거 지향에 머뭅니다.

민주화의 요구에 반한 모순과 이율배반이 당연하게 인지되고 성행합니다.

단원들의 자율이 무시된 지휘자와 청중들만의 거래는 구소련 체제 하의 과거 방식입니다.

훌륭한 음악이란 시간이 걸리더라도 구소련 체제 하의 인위적인 음악이 아니라, 여기에 휴머니즘까지 포함되어야 진정한 훌륭한 예술이 되는 겁니다.

이래서 군사독재의 잔재가 아직 청산되지 않았다는 것이구요...

문화와 예술이 분리된 각자의 모순과 이율배반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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