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고도
강남 고속 터미널에 도착해 가장 일찍 떠나는 경주행 고속버스를 탄 시간이 6시 5분.
기차를 타려니 서울역까지 가야하는 번거로움에 불가불 택한 선택이다.
덕분에 실로 오랜만에 경주 가는 고속도로를 둘러볼 수 있었고...
중학교 수학여행 때 수십 대의 대절 버스에 학우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한껏 부풀어 공식적인 허락 아래 집 떠나는 즐거움에 취한 때가 벌써 수십 년 전...
아득한 그 때의 옛 추억을 잠시 떠올리기도 하고...
경주를 거쳐 가기는 서너 번 했던 것 같으나 그저 스쳐간 것이니 이번이 두 번째라고 해야 하겠지...
하지만 이번 여행은 혼자이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아침 새벽의 전원 풍경은 그지없이 평화롭기만 하다.
지나다니는 차들도 한가롭고 여유롭게 보이는 건 복잡한 도심을 떠났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고...
교통 체증으로, 보이는 차들이 다 원수 같아 보이는 각박한 도심 아니었던가?
경주 고속버스 터미널은 그저 지방 시골의 한 풍경이다.
신라 천년의 고도답게 도심 특유의 색깔이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다.
가는 곳곳마다 옛 풍취의 기와집들이 정겹게 다가오기도 하고...
택시를 타고 보문 단지 내의 교육문화회관으로 향했는데 관광지 특성인지, 원 거리일수록 할증이 되는 모양이다.
세미나장에 도착하여 노트북을 꺼내들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다 보니 오전 일정이 끝났고, 오후에 이러닝 팀의 천세영 교수와 합류한다.
이후 세미나의 내용은 해당 한국과 일본의 교수, 연구원들 전문가의 몫이니 넘어가기로 한다.
이 날 밤 천세영 교수와 한 방을 쓰면서 우리 사회상에 대해 일대 담론이 벌어지고...
아까 저녁 뷔페 때 김대영 교수와 함께 한국 일본 중국의 학계 실정에 대한 비교와 진단에 이어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확대된다.
김대영 교수의 과학계 진단을 잠깐 옮겨 보면,
한국은 교수의 주도 아래 제자들이 일사불란하게 논문이니 연구가 진행되어 거의 교수의 작품이 되나,
일본은 교수가 처음 줄거리만 잡아주고 전혀 제자의 연구에 관여하지 않아, 스스로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무언가를 만들게 한다.
또 중국은 여러 과제 가운데서 유심히 살펴 가장 중요한 맥을 짚어 연구를 진행하는 실용주의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 도중 우리 음악계를 생각한다.
선생이 제자를 양성하는 데 있어 창의력이나 스스로 연습하고 연주하는 능력을 키워주고 있는가?
대학 졸업 때까지 스스로 보잉도, 손가락 번호도 매기지 못하는 학생이 수두룩한데...
언제까지 선생의 그늘 아래 두고 자립하지 못하게 하려는지...
그러한 시스템에는 입시와 콩쿠르 등 악순환의 고리가 산재해 있는데...
학부형과 학생 선생이 만드는 부실 합작품이 음악계의 현실이다.
우리만 그런 줄 알았더니 역시 그 사회가 그 사회인 모양이지...
교육계의 자율과 개방이 필요한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지...
무한 경쟁시대에 뒤떨어진 교육계의 무책임한 한 단면이기도 하다.
천세영 교수의 청와대 비서관 입성기도 곁들여 사회 전반에 걸친 진지한 이야기가 밤늦도록 이어진다.
자유란 어느 한쪽만으로 치우치면 나머지 한쪽은 규제를 당해야 한다.
그 규제를 한쪽 편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하겠다면 그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고 사회주의이지...
모두 다 자유라야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이다.
모든 만사는 다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가야 풀린다.
다음날 아침 코어 유니버시티 한국 측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 일본 교수들을 위해 경주 유적을 관광한다.
그 옛날 중학생 때 돌아봤던 흑백사진 시절의 불국사 주변과는 사뭇 다르기는 하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것 같다.
이제는 곳곳에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있는 것이 다르고...
다보탑은 균열로 인해 수리 중이었고 석가탑은 옛날 그대로이다.
단청이나 천정의 빛바랜 색깔은 무수한 시절을 묵묵히 지켜본 고적답게, 인간사 풍상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민족 얼마나 오랜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가?
세계에서 가장 역사 기록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천세영 교수의 부연 설명을 들으며, 우리 역사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가깝고도 먼 나라의 일행과 함께 사연 많은 고적의 애달픈 사연들을 대하니 속으로 탄식이 절로 나온다.
다음은 토함산 석굴암을 향해 일행은 자리를 떴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일본 교수들을 뒤따르며 생각에 잠긴다.
그 옛날 이러한 찬란한 문화를 가졌고 그 문화를 일본에 전수하기도 했으나, 결국 나라까지 침략당해 문화재를 탈취당하고 우리 고유의 문화가 말살되는 와중에, 그들 눈에도 얼마나 귀했으면 보존하려 애썼을까?
김대영 교수가 석굴암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래는 천정이 흙으로 되어 있었고 바닥에는 산에서 흐르는 찬 시냇물이 석굴암 내부의 기온과 습도를 절묘하게 맞추었다고 한다.
하지만 옛 조상들의 속깊은 이치를 모르는 어설픈 현대인들이 과학 운운하며 그 물길을 없앴고, 천정은 일본인들이 돌로 막았는데, 그 후 한국인들이 그 돌에 시멘트로 아예 숨을 못 쉬게 만들었고, 이후 석굴암은 표면 산화 등 부식이 진행되어 할수없이 전면을 유리로 막고, 인위적인 냉방과 제습으로 어두운 굴속에 갇혀버렸다는 것이다.
천 교수의 종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의 범종들이 좌우가 다른 비대칭으로 멀리 울려 퍼지는 소리를 만들어냈다고 하는데, 그 이유인즉 산이 많아 조상들이 그 산을 넘어 멀리 가는 소리를 고안했다는 것이다.
현대 공학으로도 그 범종을 매단 철물의 강도를 도저히 재현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하고...
고려 청자와 이조 백자에 대한 이야기도...
경주 최부자집 요석궁에서 중 천세영 교수는 기차 시간이 빠듯해 먼저 떠나고, 맛난 점심을 하며 어릴 적 놀던 나와바리에 대해 김대영 교수, 김병철 교수, 이공주 교수 등과 함께 흑석동과 명수대 한강의 옛날이야기를 곁들인다.
이윽고 예약된 버스 시간에 맞추어 김병철 교수와 나, 김해공항으로 가는 일본인 교수 셋은 일행을 빠져나온다.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의 TV에서 전직 대통령의 장례 뉴스가 나온다.
북한 조문단 일행이 도착하여 조문하는 광경이 실시간으로 나오는데...
한쪽에서는 반대 데모,
한쪽에서는 박수를 치고...
전직 대통령의 일기 내용이 나오자 갑자기 채널이 다른 쪽으로 돌아간다.
천년의 고도도, 같이 있던 이웃 나라도 변함은 없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