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타 서울 SNS/음악지 칼럼

밴쿠버 심포니와 힐러리 한의 연주를 접하고...

Conductor 2008. 10. 12. 09:15

음악세계

 

최영철 / 사)카메라타 서울 이사장, 한국첼로학회장

 

성남아트센터가 개관 3주년을 맞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과 90년 전통의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오페라 극장에서 10월 11일 연주를 가졌다.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VSO)는 9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캐나다의 대표 오케스트라로 2000년 9월 말러 교향곡 1번에서부터 벤자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지휘자 브렘웰 토비(Bramwell Tovey)와 함께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이번 내한 연주에서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과 캐나다의 젊은 작곡가 제프리 라이언(Jeffrey Ryan)의 현대음악 The Linearity of Light(빛의 선)을 연주하였다.

 

힐러리 한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발군의 테크닉과 음악성을 선보였으며, 열다섯 약관에 연주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란트’상을 수상, 데뷔 초 녹음한 음반으로 디아파종상,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그래미상, 2008년에는 영국 클래식 FM이 선정한 2008 그라모폰 어워드 ‘올해의 아티스트 부문 1위’등을 수상하며 세계음악계로부터 그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날 힐러리 한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협연했는데, 이 곡은 완성되었을 당시 연주 의뢰를 받았던 당대 러시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폴드 아우어로부터 기능적으로 도저히 연주할 없는 곡이라는 폭언을 들었던 최고 난이도의 곡으로 힐러리 한은 완벽한 기교와 시종 흔들림 없는 연주로 관객의 우뢰와 같은 커튼콜로 두 곡을 더 연주해야 했다. 계속되는 커튼콜을 미소의 인사로 대신하고 퇴장하는데 갈수록 기량이 원숙해지는 이 소녀 대가의 정점은 어디까지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10여 년 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가 "가장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로 미래에 큰 주목을 받을 것이다"라고 했던 힐러리 한은 그녀의 예언대로 현재 젊은 여류 바이올리니스트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휘자 토비는 오케스트라의 잠재된 역량을 충분히 끌어내는 절제된 바톤 테크닉의 소유자였으며 연주 내내 오케스트라와 환상적인 호흡으로 음악을 리드했다. 라이언의 창작 곡은 오케스트라 각 악기를 잘 활용해 특수 연주법을 선보이며 색채감 있게 작곡하여 지휘자, 연주자는 물론 관객 모두 처음 듣는 창작 곡의 지루함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게 하였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은 오케스트라의 많은 연주 경험이 묻어난 원숙한 연주를 들려주었고 특히 오케스트라 각 솔리스트들의 활약이 돋보인 연주였다.

 

성남아트센터는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 앙상블시어터와 전시 공간, 아카데미 등을 갖춘 복합 문화공간이다. 우선 대극장 오페라하우스는 1804석의 규모로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모두 소화할 수 있어 공연 제작자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정통 클래식 공연장으로서의 장점을 고루 갖춘 콘서트홀은 이미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2005년), 메조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2006), 앤드류 멘츠와 잉글리시 콘서트(2006)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찾으며 그 우수성이 증명된 바 있다. 특히 2007년 콘서트홀을 찾았던 뮌헨 챔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알렉산더 리프라이히는 "실내악을 위한 홀로서 최고의 음향을 가졌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콘서트홀의 완벽한 공명과 잔향은 스튜디오 레코딩에도 알맞아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의 녹음 작업이 이뤄지기도 했다고 한다.

소극장 앙상블시어터는 다목적 홀로 설립됐으며 무대와 객석을 공연 목적에 따라 변동이 가능해 복합 극예술 무대가 가능하다.

 

성남아트센터는 30여개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와 '말러 2번-부활'만을 지휘해 온 말러의 전설 길버트 카플란의 내한 무대를 시작으로 마티아스 괴르네 리사이틀에 이어 2005년 최고 오페라 '파우스트' 자체 제작 등 개관 초부터 공연 예술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굵직굵직한 공연들을 이어왔다. 또 고전 발레의 재해석으로 관객들에게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한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2005년 10월과 2007년 2차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를 찾았으며 2007년에는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가 지휘자 데뷔 무대를 갖기도 했다.

또한 성남아트센터 미술관은 피카소와 로댕의 작품 200여 점을 전시한 '피카소, 로댕과 함께 떠나는 유럽여행'(2006), 유럽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유럽 현대미술의 위대한 유산'전(2007), 그리고 국내 팝 아트 작품들과 앤디 워홀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팝 앤 팝'전 등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다.

 

이처럼 수준 높고 차별화된 공연 및 전시를 유치한 결과 지난 5월 17일 공연 유료 관객 100만을 돌파하는 성과를 냈으며, 2008년 9월 30일 기준 총 공연 관람객수는 109만 1180여 명, 전시는 야외 조각전 관객 등을 포함하여 8만3600여 명으로 총 방문 관람객 수 200만 돌파가 멀지 않았다고 한다. 전국의 지방자치 단체들이 성남아트센터의 성공적인 경영을 벤치마킹하여 전 국민의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다만 이날 아쉬웠던 점은 쾌적한 환경 위에 세워진 여러 장르가 합쳐진 복합 공간으로서 관객의 발길을 끄는 이상적인 장소인데도 불구하고,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차들의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많은 시간이 소요된 점이다. 일찍 도착한다 해도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낭비되어, 연주 시작 시간에 입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차가 몰리는 시간에는 초소와 인원을 한시적으로라도 늘리는 융통성이 요구되었다.

 

하늘 맑은 가을의 중턱, 쾌적한 분당의 문화공간에서 수준 높은 연주로 눈과 귀가 즐거웠던 토요일 오후였다.